어느 날
오래된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난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거 같아.”
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한 것일까?
일단 그녀의 힘든 마음을 들어봐야 할 거 같았다.
“많이 힘들구나? 어떤 점이 널 힘들게 했는지 말해 줄 수 있니?”
난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그녀의 두 눈동자를 바라봤다.
총기 있게 반짝이던 그녀의 눈빛이 절망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요즘 내가 왜 사는지 의미를 모르겠어.”
“직장 상사는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난 그때마다 주눅이 들어.”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늘 딱 한 마디야.”
“죄송합니다.”
“딱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말이야.”
“그런 내가 참 바보처럼 느껴지는 게......”
“회사. 집. 회사. 집...... 그렇게 죽어라 일만 하고.”
“점점 내가 왜 사는지 의미를 모르겠어.”
“점점 내 자신이 위축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 가는 거 같아.”
그녀는 말문이 터지자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그녀의 얘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그녀에게.
“그래.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해.”
“나를 무시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 점점 내가 작아지는 느낌.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 걸?”
“화가 나서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내가 처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버리고.”
“그럴 땐 말이야. 속으로라도 실컷 상대를 무시하고 욕해. 네가 느끼는 감정들을 일기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그냥 꾹꾹 눌러 담는 것 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난 내가 화가 날 때 써 먹던 방법을 그녀에게 일러 주었다.
물론, 그 방법이 통할지 장담은 못하지만.
그때였다.
나와 그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벤치 앞, 바닥에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줄지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저것 좀 봐. 저렇게 조그마한 개미도 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지? 우리가 볼 땐 하찮은 미물 같아도 말이야.” “개미들도 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가고 있잖아.”
우리는 개미떼들의 행진을 한참 바라봤다.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에는
다 나름의 존재지유가 있다.
한 줌의 햇살에도
흘러가는 바람에도
다른 누군가가 그것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개미의 존재를 인정해주는지와 상관없이 개미는
그 존재 자체로 스스로 목적을 부여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을.
내 자신을.
타인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무너질 필요가 없다.
내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나에게 사랑 받아야 마땅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자.
내가 만족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타인의 시선에 집중을 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것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 건 바로 내 자신이다.
내 삶인데 타인의 시선을 겨냥하고 살아간다면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작은 미물에도 존재의 이유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보다 못할까?
내 존재의 가치를 타인에게 채점하도록 허락하지 말자.
내 삶은 오직
내 자신만이 채점할 수 있는 고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