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이 진하게 기억된다는 것은

by 청비

ㅡ 코로나 이전 이야기입니다.ㅡ


충주 비내섬에 차를 두고 자전거로 여주 여의보까지 왕복 83km의 자전거 라이딩.

주말을 이용해 국토종주를 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우리의 두 번째 장거리 라이딩이었다.

비내섬 외곽코스


비내섬 외곽코스는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마음이 느긋해지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멀리 산자락으로 보이는 푸르름도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달렸다.

남편과 나와 아들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이 순간의 여유를 만끽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나아간다기보다 바람을 타고 마냥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근심 없이 우리 앞에 놓인 길과 그 옆의 풍경만 보였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 그리고 지나온 길.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시멘트길도 있고 아스팔트길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맨땅이나 자갈길도 만나게 된다.

맨땅이나 자갈길은 아주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미끄러져서 넘어지거나 타이어에 펑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의 로드 자전거에 맨땅이나 자갈길은 쥐약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려면 이런 맨땅이나 자갈길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로드 자전거를 타는 아들을 위해 걸어서 그곳을 지나간다.

장시간 자전거를 타다가 잠시 걷는 그 순간 뭉쳐 있던 허벅지 근육이 조금 풀어진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가 깨달았을 거라고 믿는다.

걷고 달리다가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여유도 가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배웠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매 순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아들

정적인 아이가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와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자전거를 타고 햇볕을 쐰 후로 피부가 검게 그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이 건강해 보여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정적인 건 아이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하지만, 가끔은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와 무언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고 변화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나 sns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적인 부분이 세상 밖에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달리는 모자

강을 따라 펼쳐지는 수려한 경관이 눈을 지나 가슴으로 들어왔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산뜻한 공기를 들여 마시는 일이 힐링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현재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내 삶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지금 우리는 이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와락 끌어안으며 서로를 보듬고 있다.


강을 따라서 가는 자전거도로


휴식 중 초코바로 당 보충

약 십 여 키로 달려서 첫 번째 휴식 중.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코바를 꺼내 당 보충을 했다. 과하게 달달한 초코바가 입 안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지친 몸속으로 그 달달함이 들어오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작은 초코바 하나가 나를 웃게 하다니!

그 사실에 또 한 번 웃었다.





앞으로 펼쳐진 산과 강을 바라보며 휴식 중


강원도에 입성!

드디어 강원도!!

자전거를 타고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넘어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가 강원도야!”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원도는 처음이에요.”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폈다. 말로만 듣던 강원도를 처음 본 아이는 순간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이 먼 곳을 오다니!

“엄마, 여긴 강원도 원주시 외곽인가봐요.”

간혹 보이는 집과 건물들을 보고 아이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엄마도 여긴 처음이지만.”

낯선 시골 마을 풍경이지만, 나는 본래 시골 출신이라 정겹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에서

한참을 달리니 눈앞에 떡 하니 오르막길이 보인다. 시멘트로 된 길에는 미끄럼 방지용 나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힘들고 지칠 땐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속도를 늦추고 나니 주변 풍경이 더 자세히 보였다. 조용한 풍경 위로 우리의 거친 숨소리가 빠른 리듬을 타고 흘렀다.

건강한 리듬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인 것 같았다.


"아직 견딜만해요"

장시간 라이딩을 한 탓에 허기가 진 우리는 근처 식당을 찾아 페달을 밟았다.

몸속에 에너지가 서서히 고갈되었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들이 저만치 먼저 나아갔다.

“힘들지 않아?”

내 옆을 스쳐 가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직 견딜만해요.”

아직 견딜만하다는 말은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힘들지만, 참을 수 있다.’라는 아이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

장거리 라이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허벅지와 엉덩이의 통증 그리고 차오르는 숨의 연속이다.

그 고통을 극복해야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이가 고통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 더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았다.

허름해 보이는 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저런 곳이 맛집인 경우가 있어.”

남편이 자전거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외관은 낡고 오래된 것 같은 작은 식당이었다.

“드르르ㅡㅡ륵”

미닫이문을 열자 테이블 위에서 파를 손질하던 할머니께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자마자 물수건과 물병을 가져오셨다.

낡은 벽지 위에 어설픈 손글씨로 적은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메뉴판이라기 보다는 종이를 붙여 놓은 것이었다.

‘백반’

종이 위의 글씨는 간결하고 고집이 있었다. 무슨 반찬과 찌개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워낙 배가 고픈터라 우리는 일단 주문했다.

“여기 백반 3개 주세요.”

주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넓은 쟁반에 반찬을 내오셨다.

취나물무침, 도라지나물볶음, 말린도토리볶음, 고등어구이, 말린호박볶음, 배추겉절이... 정갈하게 놓인 반찬들은 죄다 내가 선호하는 것들이었다.

아이는 테이블에 놓인 반찬들을 쭉 훑어보더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수한 청국장에 흰 쌀밥이 나왔다.

“자, 그리고 이것은 학생 먹으라고 주는 서비스야.”

할머니께서는 두툼한 계란말이를 내오셨다.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할머니의 정성 어린 서비스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청국장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은은하게 퍼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모든 반찬이 간이 세지 않고 적당하였으며 재료 본연의 맛이 잘 느껴질 만큼 많은 것을 추가로 넣지 않았다.

“입에 맞을란가 모르겠네.”

할머니는 홀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맛있어요. 진짜 친정엄마 집밥 먹는 기분이에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다행이구만. 요즘 사람들은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좋아해서......”

할머니는 말꼬리를 흐리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우리가 밥을 다 먹어갈 무렵 무언가를 들고 나오시는 할머니.

“이거 내가 만든 식혜인디, 맛이나 보라고.”

식혜 귀신인 남편과 아들은 횡재한 기분으로 살얼음을 동동 띄운 식혜를 마셨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직접 만드신 식혜도 다 내주시고.”

우리는 주섬주섬 헬멧과 장갑을 챙기며 일어났다.

백반 일 인분에 오 천원이었다.

“가족이 다 같이 운동하러 다니고 아주 보기 좋구만.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이여.”

떠나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한참 동안 할머니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눈에 선했다.

“할머니는 장사해도 이익이 하나도 안 남을 것 같아요.”

아이가 걱정이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그런 할머니라서 우리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드러났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염려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계속 성장하길 바란다.

열린 마음으로 한 뼘 더 성장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에 고단한 하루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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