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코로나 이전 이야기입니다.ㅡ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다. 아들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었다. 회사 동료들이 자식들 이야기를 하며 물었다.
“아들은 괜찮아?” “한창 사춘기 겪을 시기잖아.”
아들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늦게 들어오거나 말썽을 부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요즘 들어 방에서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외동으로 키운 것에 대한 후회가 그때 처음으로 밀려왔다.
‘혼자 외롭지는 않을까?’
사남매를 둔 동생네는 항상 떠들썩하고 복작거린다. 웃고 떠들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런 과정들로 인해 조카들은 더 성장하고 경험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아들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했다.
미동이 없는 한 폭의 그림처럼 늘 제자리에 있었다. 느닷없이 내린 비에 몸이 젖기도 하고, 한밤중에 휘몰아치는 폭풍에 놀라기도 하는 게 인생인데.
오히려 안일하고 점잖은 아이의 일상이 염려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자전거 라이딩을 제안했다. 정적인 성향의 나와 아들, 그리고 동적인 성향의 남편은 충주 탄금호 자전거길로 떠났다.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 부딪혀보는 일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생산직 근로자인 나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부쩍 피곤함을 자주 느끼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뻐근하고 붕 뜨는 느낌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거나 산뜻하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내 안일한 일상이 금방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
일단! 시작해보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자전거에 올랐다. 사실, 나와 아들은 얼마 전에 남편에게 자전거를 배웠다. 운동신경이 둔한 우리는 자전거를 제대로 타기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스스로 균형을 잡고 자전거 페달을 굴릴 때까지 좌로 우로 헤매다가 넘어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준 남편과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자전거 바퀴를 스스로 굴릴 수 있게 된 순간의 짜릿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그 첫 경험을 떠올린다. 그 순간의 희열이란 감동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각자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올랐다.
“자!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가면 되는 거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남편이 우리에게 당부하고 선두에 나섰다. 처음으로 떠나는 장거리 라이딩이라 한 30분쯤 달렸을 무렵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수안보에서 충주 탄금호로 들어가기 전 휴식 시간수안보에서 충주 탄금호로 들어가기 전 길가에 정자가 보였다. 첫 번째 휴식 시간이었다.
“어때? 괜찮아?” 묵묵하게 앉아 숨을 고르는 아이에게 물었다.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표정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준비해간 얼음 생수로 목을 축이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노란 루드베키아가 한창이었다. 햇살과 바람을 머금고 더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충주 탄금대 공원충주 탄금대 공원을 누비며 늦은 봄 날씨를 만끽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수록 시원한 바람이 내 몸에 부딪혔다. 부드럽고 시원했다.
“시원하고 좋지?”
남편이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큰소리로 대답하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렸다.
오늘따라 밝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 모습에 덩달아 기운이 솟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들바보인 것 같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고, 네가 웃으면 나도 웃고.
탄금대 공원 안에는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걷는 아이의 곁을 지켜보는 여자가 있었다. 저만치 걸어가던 아이가 넘어지더니 금방 울음을 터트렸다.
“서준아! 일어나면 돼. 일어나.”
여자는 한 발자국 물러나 아이에게 말했다.
“애 엄마가 얼른 일으켜줘야지. 뭐 하는 거야? 쯧쯧쯧”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지 않는 냉정한 엄마라고 지나가던 어르신이 혀를 찼다.
잠시 뒤 아이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더니 빙그레 웃는다.
“우리 서준이 참 잘했어요!”
여자는 아이의 옷을 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얼마든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학습을 시키려는 여자의 마음이 엿보였다.
경험의 확장은 사고로 이어지고 한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가 된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여자와 아이를 보면서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충주댐 인증센터다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충주댐 인증센터.
거치대에 자전거 세 대를 나란히 세워 두었다. 물론 우리 옆으로 다른 자전거들도 여러 대 보였다. 자전거 동호회로 보이는 팀도 있었고, 친구끼리 온 팀도 보였다.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에 다부져 보이는 체격의 동호회 남자 한 분이 우리를 쳐다봤다.
“가족인가봐요? 요즘 애들은 부모님이랑 이런 거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좋아 보이네요.”
중학생인 아이가 친구들이 아닌 부모님과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모습이 생소해 보였던 것 같았다.
오늘 아침 흔쾌히 따라 나서준 아이가 고마웠다. 그리고 더 많은 곳을 함께 달릴 수 있기를 바랐다. 땀에 젖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준비해간 타올로 닦아주었다.
인증 도장을 찍는 아들
충주댐 인증 도장!충주댐 인증센터에서 인증 도장을 꾹~꾹 찍고 우린 국토 종주를 다짐했다.
국토종주 코스마다 정해진 위치에 인증센터가 있다. 그곳을 모두 들려 인증 도장을 찍어야만 종주를 인정받고 인증서와 금메달을 수여 받을 수 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새로운 길을 달릴 생각을 하니 설렜다. 그런 와중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과연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오랜 라이딩 탓에 다리가 뻐근하고 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통증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면서 오늘의 경험에 대해 곱씹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주는 일, 그것은 강물에게 새로운 파문을 일으킨다. 그 경험의 확장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그런 계기를 열어 주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 줄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해 가는 것.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 하나가 던져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