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녀가 눈물을 보이며 슬퍼했다.
아주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다고 했다.
대성통곡 하던 그녀는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평소에 그녀의 성품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그런 악담까지 해댔다.
그런 그녀가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에 대해 가늠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순간 돌변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벌써 몇 시간째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세상에 남자는 많다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거라고.
그런 남자랑 결혼까지 안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솔직히 네가 더 아깝다고.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다 했던 거 같다.
그러자 그녀도 좀 진정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면서 남자친구라고 했다.
그녀의 가슴에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며칠 뒤에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그녀의 문자 내용에서 그녀의 마음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네 날이 맞았어. 세상에 남자는 많아.
그리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났어.
그 날 너의 위로 덕분에 위안이 되었어.
고마워.]
나의 작은 위로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간간이 위로를 하며 살아간다.
남의 슬픔, 상처, 괴로움......
그런 것에 대한 위로에는 너무 익숙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 대한 위로에는 익숙하지 않다.
슬픔을 만나면 한없이 슬픔에 머물러 있다.
상처를 만나면 세상 온갖 상처는 다 끌어안고 끝없는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
괴로움을 만나면 마주한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왜 나의 슬픔, 상처, 괴로움......
그런 것 따위에는 위로가 인색할까?
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위로에 익숙한 만큼 자신에 대한 위로에도
익숙해지는 건 어떨까?
‘토닥토닥’
나에게 위로 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타인에게 아낌없이 위로하듯.
슬픔과 마주앉은 나에게 나의 위로는
가장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