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어느 날.
기억이 가물가물 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시장에서 야채, 건어물 도소매업과 신발소매업을 겸하며 바쁘게 살던 날이었다.
그 시절, 나의 관심은 오로지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이었다.
비록, 누추한 행색에 많은 것들을 체념하고 살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어? 저 오토바이 멋있네? 누구 거지?”
하면서 시장 앞에 놓인 파란색 오토바이 한 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의사도 묻지 않고, 구입한 본인의 오토바이였다.
남편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하나 있는데,
거짓말을 하거나 날 속이려고 할 때는 코 주위를 씰룩거린다.
통장에서 오토바이를 구입하기 위해 거금을 마음대로 인출하다니.
참 철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때는 오토바이 한 대 값쯤은 금방 벌어들였던 시기였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황금기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시장에서 틀어박혀 살던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열심히 살았으니 오토바이 한 대쯤은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 한 대에 싱글벙글인 남편의 얼굴을 보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오토바이 한 대에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 하나가 오토바이는 위험해서
대부분의 아내들이 반대를 한다고 하더라. 라고 말했다.
위험한 오토바이가 뭐가 좋을까? 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리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본인이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던 것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억울하지 않을까?
물론, 오토바이 구조상 차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망하던 것을 취하기 위해 본인이 감수해야 할 일인 것이다. (안전운전은 필수!)
남편은 지금껏 다행히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다.
누구나 스스로 갈망하던 것을 취할 능력과
감수할 수 있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지금 당장 실행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길고도 짧다.
사람마다 개개인의 행복론이란 게 있다.
누구는 명품백에 행복을 느끼고,
또 누구는 책 한 권에 행복을 느낀다.
각자의 취향 차이다.
누구의 취향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기준에서 남의 행복을 섣불리 판단하고 논하지 말라.
내가 좋다고 남이 좋을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다.
제 각각 다른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행복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지 말자.
그 잣대는 오로지 나에게만 유용한 것이다.
각자의 행복론에 의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가족, 친구......
엄밀히 따지면 그들 또한 타인이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완벽한 타인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서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우정을 쌓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론의 기준까지 유사한 건 아니다.
대리인 수상, 대리인 신청......
그런 단어들은 익숙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행복은 그 누구도 대리인으로 내세울 수 없다.
나의 행복은 그 누구도 대신 가져다 줄 수 없으며
대신 느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냥
나의 취향대로 가치관대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최고의 삶이 아닐까?
나에게만큼은 그 어떤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행복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운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섣불리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말자.
나는 오직 나의 삶에
그리고 나의 행복론에 대해서만 신경쓰자.
거리.
그래. 거리라는 표현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타인에 대해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인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되
그들의 삶에 적당히 끼어들라는 뜻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자.
그리고 나의 행복에 대해 신경 쓰자.
나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눈여겨 봐주고 사랑하며.
나의 삶에 애착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