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의 일이었다.
사내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므로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에 응하라는 공지가 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확진 판명이 된 사원과의 밀접접촉자들은 역학조사를 통해 자가격리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회사 전체가 술렁거렸다.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캄캄한 겨울밤을 더 두렵게 했다. 확진 판명을 받은 사원이 누구라는 검증되지 않은 헛소문이 사내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점점 제 자리를 넓혀가는 뿌리는 자신의 근원도 모른 채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달았다. 본래 헛소문이 맺은 열매는 달고 풍성한 법이다. 혀 끝의 달콤함 때문에 그 열매에 중독된 자들이 많았다.
김 부장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역학조사관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김 부장이 확진 사원과 최근에 밀접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역학조사관들은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들의 최근 2주간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역학조사관들의 질문이 귀찮고 피곤했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회사 전체에 큰 시련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부장은 자신에게 닥쳐올 거대한 폭풍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최근 2주간의 동선을 천천히 돌이켜봤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사이에 여러 여자들을 만났다.
2주 전 어느 수요일, 김 부장은 커피숍에서 은혜를 만났다.
은혜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17살의 소녀다.
은혜가 15살이 되던 해에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곤 했다. 그 모든 공간에 은혜를 향해 쏟아지는 모호한 시선들이 존재했다.
동정심이라기보다는 자신들과 다른 낯선 모습에 대한 반응이었다. 예전의 두 사람은 그런 상황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반복적인 상황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굳은살은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두꺼운 벽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무덤덤해지기 위한 일종의 가림막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무덤덤해지면 일상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다치고 아프고 치유되고 그 모든 과정들이 굳은살처럼 단단하게 박혀야 한다.
처음 은혜를 만난 곳은 종로에 있는 어느 서점이었다. 김 부장이 자기 계발서 분야의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대체 눈을 감고 다니는 거야? 뭐야?"
한 젊은 청년이 어린 소녀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반복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했다.
"다리가 그 모양이면 가만히 집에 있던가. 왜 돌아다녀서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청년은 소녀의 가슴에 날카로운 바늘을 꽂았다.
하지만, 소녀는 글썽거리는 눈물을 꾹 참으며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됐어! 됐으니까 꺼져!"
청년은 귀찮다는 듯 소녀를 밀쳤다. 그러자 소녀는 바람에 쓰러지는 촛불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가지가지하네. 병신 주제에......"
청년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아주 명확한 문장으로 소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김 부장이 펼쳐보던 책을 내려놓고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김 부장은 소녀를 일으키고 나서야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인 줄 아나?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목격했어. 당신의 행동은 엄연히 인격모독이고, 장애인을 폄하하는 발언이네."
"지금 당장 이 소녀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당신은 어떤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거야. 참고로 내 직업은 변호사라는 거."
김 부장은 청년의 귓속에 대고 분노 섞인 협박을 했다. 김 부장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청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청년은 곧바로 소녀에게 사과를 하고 후다닥 사라졌다.
김 부장은 순간 자신을 변호사라고 속인 것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났다.
인간의 대부분은 상대를 보고 내 행동을 결정한다.
상대가 나보다 약한지 강한지...... 그 여부를 간 본 후에 상대방에 대한 내 말투와 행동이 정해진다.
이 얼마나 비굴하고 야비한 일인가?
그 소녀는 김 부장이 청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그 무수한 눈빛들과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은혜가 처음 본 김 부장의 첫인상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마주친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