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계절 반상회

by 청비

지금 여긴 계절이 없는 나라예요.

꽃 피는 봄도

시원한 물놀이를 하던 여름도

울긋불긋 단풍의 계절 가을도

눈사람을 만들던 겨울도

사라졌어요!


꽃을 보며 미소 짓던 사람들도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고 웃던 아이들도

단풍 구경을 가던 사람들도

하얀 눈덩이를 굴리던 꼬마들도

사라졌어요!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여서 반상회를 해요.

봄이 먼저 말했어요.

"새싹을 틔우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야. 하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어!"

"사람들은 내가 오면 저절로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줄 알지.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야.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


옆에 있던 여름도 울먹이면서 말했어요.

"난 말이야, 뜨겁게 온 세상을 달구지. 사람들은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면서 덥다고 나를 원망해."

"더위가 없다면 물놀이가 재미있을까?"


그러자 가을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어요.

"난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가져다주고, 아름다운 풍경도 선물하지."

"사람들은 단풍으로 물든 산은 좋아하면서 산불을 내. 그 바람에 저기 보이는 저 산이 민둥산이 되었지 뭐야."

"소중한 건 귀하게 보살펴야 해. 그래야 오래오래 볼 수 있거든."


마지막으로 겨울이 말했어요.

"사람들은 참 이상해. 하얀 눈은 좋아하면서 추워서 내가 싫다고 말하거든."

"어서 겨울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얀 눈이 아름다운 건 춥기 때문이야."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그렇게 불만을 말했어요.

"맞아! 맞아! 우린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은 우릴 원망하지."

"우리 이제부터 파업이야!"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어요.


꽃과 나무가 사라지자 점점 벌과 나비들도 사라졌어요.

계절이 파업을 하자, 온 세상은 삭막하게 변했지요.

사람들은 웃음을 잃어가고, 점점 불행해졌습니다.


어느 병실에 하온이가 누워있습니다. 하은이는 갑자기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입원을 했어요.

여기저기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의사는 갑자기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적응을 못해서 생긴 병이라고 말했어요.

하온이는 작년 봄에 본 수선화가 보고 싶었지요.

"하온아, 저 꽃 좀 보렴."

하온이를 위해 엄마는 색종이로 꽃을 만들었어요.

하온이는 색종이 꽃으로 다가갔습니다.

"이 꽃에는 향기가 없어요."

하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어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나. 꽃도 나무도 통 볼 수가 없으니......"

엄마는 속상했습니다.


하온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요. 온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눈앞에 활짝 핀 수선화들이 아른거렸어요.

그 주변으로 벌과 나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건 하온이의 상상이었지요.


하온이는 오늘도 병실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엄마가 물 한 잔을 건넵니다.

하온이는 유리잔에 비친 물을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작년 여름에 온 가족이 물놀이를 가던 그때가 그리웠습니다.

"엄마, 우리에게 여름이 다시 올까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어요."

하온이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어요.

"자, 여기에 발을 담가 보렴."

엄마는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오셨습니다.

하온이는 세숫대야에 발을 담급니다. 하지만,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어요.

"첨벙첨벙 시원하게 물장구도 치고 수영도 하고 싶단 말이에요."

하온이는 투정을 부렸습니다.


세숫대야에 물고기 떼가 헤엄을 칩니다. 그 옆으로 아이들이 첨벙첨벙 물놀이를 해요.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하...... '

하온이는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쉽니다.


하온이는 작년 가을에 단풍놀이를 가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있어요.

"하온아, 우리 알록달록 낙엽을 그려볼까?"

엄마는 하온이와 스케치북에 낙엽을 그렸어요.

"이 낙엽은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질 않아요."

하온이가 스케치북에 있는 낙엽을 밟으면서 말했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요. 바스락바스락-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리네요. 하온이는 폭신폭신한 낙엽 위를 걸어 다녀요.

그러다 점점 발아래가 딱딱해집니다.

하온이는 자꾸만 상상을 합니다.


"형아, 지금은 무슨 계절이야?"

하온이의 침대 옆에 누워있는 꼬마가 물었어요.

"응? 글쎄......"

하온이는 창 밖을 바라봤어요.

온 세상이 너무 밋밋했어요. 회색으로 뒤덮인 산, 가로수가 없는 길가,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

"형아, 형아. 나 눈사람 만들고 싶어. 눈사람."

꼬마는 하온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하온이는 하얀 솜뭉치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니잖아, 눈사람은 차갑단 말이야. 손이 닿으면 내가 눈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꼬마는 솜뭉치로 만든 눈사람을 만지작거리며 울먹였습니다.


하온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창 밖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어요.

창 밖에 흰 눈이 펑펑 쏟아져요.

"와! 눈이다!"

하온이와 꼬마가 눈덩이를 굴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다 점점 눈이 그치고 온 세상이 어두워졌어요.

상상의 나라 속에서 하온이는 즐겁습니다. 하지만, 상상의 나라는 금방 사라져요.


하온이가 점점 야위어갑니다. 하온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리워해요.

엄마는 기도를 합니다.

"계절 없는 세상은 너무 슬퍼요. 우리에게 다시 계절이 왔으면 좋겠어요. "

"우리에게 계절이 필요해요."

엄마는 하온이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려요.


"우리에게 꼭 계절이 필요해요."

반상회를 하던 계절들에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생각합니다.

꽃을 보고 미소 짓던 그 얼굴들을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던 웃음소리를

단풍놀이를 가던 발자국 소리를

눈덩이를 굴리던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자신들을 원망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퍼요.

하지만,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기뻐요.

계절들은 다시 한번 힘을 내기로 해요.

사람들에게 찾아가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기로 해요.

다시 한번 사람들을 믿기로 해요.

소중한 것은 귀하게 보살펴 줄 거라고 믿어요.


그때였어요.

하온이가 코를 킁킁거립니다. 활짝 열린 병실 창문으로 꽃 내음이 들어와요.

"와! 봄이다! 봄!"

하온이는 신이 났어요.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창가에 모여 봄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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