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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원 Sep 15. 2023

희망을 붙잡기 위해선 꿈을 꾸다

잊어버림의 역설

2023년 8월 31일, 슈퍼문이 뜬다는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강화도 나들이를 갔다. 초지대교를 지나 쌀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동막 해변에 갔다. 평일이라 해변가는 한산했다. 나는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해변가로 내려갔다. 물이 빠지고 멀리까지 갯벌이 이어지고 있었다. 갯벌로 들어갔다. 발을 옮길 때마다 진흙의 촉촉함이 느껴졌다. 갯벌을 밟으며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속 폐부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 가슴이 시원했다. 지난해 12월 초에 퇴직한 이래 얼마 만인가. 어느 정도 갯벌을 걷다가 밖으로 나왔다. 해변 모래틈새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모래를 모아 모래댐을 쌓았다. 모래를 파고 쌓아 벽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정물이 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와 점점 맑아졌다. 모래댐에 발을 넣고 씻었다. 모래댐 놀이를 마치고 길가 수돗가로 가서 발을 씻고 손을 씻었다. 옷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나는 다시 해변으로 가 방파제에 섰다. 그 사이에 파도가 쓰으쓱  소리를 내며 앞으로 앞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의 소리와 움직임에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파도가 오는 동안 갯벌은 사라지고 나의 발걸음 흔적도 지워졌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은 동막 해변을 떠나 인근 한 카페에 갔다. 가족은 먼저 들어가고, 나는 카페 마당에서 주변경치를 둘러본 뒤 길가 가판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아주머니와 고구마며, 땅콩이며 농사짓는 일과 농촌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에 들어갔다. 가족은 창가 작은 방에 있었다. 


나는 차를 마시고 빵을 먹은 뒤에 가족에게 시를 낭송해 주겠다고 했다. 오늘 가족 나들이에 읽을 두 편의 시를 준비했었다. 바로 이스라엘 시인, 예후다 아미카이(Yehuda Amichai, 1924~2000)의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과 <에인 야하브>였다. 


나는 먼저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Forgetting Someone)>을 낭송했다. 


어떤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뒤뜰 전등을 끄는 걸 잊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날 내내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당신이 기억하도록 만드는 빛이다.

(출처 : 예후다 아미카이의 선택된 시들(The Selected Poetry of Yehuda Amichai). 전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만나지 않거나 연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 조금씩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사라져. 점점 시간이 지나면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잊고 지내지. 그런데, 어느 날, 잊어버렸던 그 사람이 떠 올라.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아무리 그 사람의 이름을 떠 올리려고 하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해? 그 사람과 만났던 장소, 그때 나눈 이야기, 그 사람의 인상착의 등을 떠 올리려고 무척 애를 쓰게 돼. 한 참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그 사람의 이름이 떠 오르기도 하고, 또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 올라.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지. 이것은 마치 우리가 뒤뜰 전등을 켜두어 다음 날 내내 전등이 켜져 있는 것과 같아. 우리는 그 전등을 보고는 "아, 잊어버렸구나, 안 껐구나"라고 생각하고 전등을 끄게 돼. 우리가 무엇인가를 잊는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은, 마치 전등을 끄지 않음으로써 전기를 쓰듯 안 좋은 것인데, 우리는 그 사람을 잊어버림으로써,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지만, 어느 순간에 그 사람이 보고 싶어 그 사람을 떠 올리고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다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하게 돼. 이것이 '잊어버림'의 역설(paradox)이야. 우리가 잊어버림으로써 다시 기억하는 것은 단지 사람이나 단순히 사실만은 아니야. 그것은 지난 역사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소중한 추억일 수도 있고. 잊어버린 책들, 비 오는 날 닫지 않은 창문 등. 그 무엇이든 잊어버림은 우리가 다시 기억하도록 만드는 빛이라는 거야. 짧은 시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


희망은 가시철사로 보호되어야


 이어서 나는 <에인 야하브(Ein Yahav)>를 낭송했다. 낭송 전에 나는 아라바는 지역 이름이고, '에인 야하브'는 '희망의 원천(Wellspring of Hope)'이라는 뜻을 가진 모샤브(농업공동체)라고 말했다. 


아라바 에인 야하브로 야간 운전.

우중(雨中) 운전. 그렇다. 비가 오고 있다.

거기서, 나는 야자수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서, 나는 큰 에셀 나무들을 보았다

거기서, 나는 희망이 가시철사처럼 가시가 돋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것은 진실이다. 희망은

절망을 쫓아내기 위해 가시철사처럼 되어야 한다.

희망은 지뢰밭이어야 한다.

(출처 : 인터넷(www. poemhunter.com), 전문) * 에셀나무 : 상수리나무 일종


나는 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사람에게 희망은 중요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뿐만 아니라 희망으로 살기 때문이야. 사람에게는 희망이 필요해. 사람에게 희망이 있어야 꿈을 꾸거든. 희망이 꿈보다 먼저야. 그런데 희망이 모두 꿈이 되고, 꿈이 비전이 되고, 비전이 목표가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야. 희망은 가끔 어떤 상황 앞에서 실망을 안겨 주고, 절망으로 변하기도 해. 그렇게 나아지고 변화될 것 바라고 희망하였지만 상황은 변화하지 않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상황은 나아지거나 변화될 조짐이 없어. 앞이 잘 보이지 않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이러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가시철사처럼 가시가 돋치게 하고, 또 희망은 절망을 쫓아내기 위해 가시철사처럼 되어야 한다는 거야. 여기 옆에 포도밭이 있잖아. 밭에 울타리를 치지. 포도를 보호하려는 거야.  지뢰밭은 히브리어로 '세데 모크심'(שדה מוקשים)인데**, 영어로는 마인필드(minefield)야. 마인필드는 광석 매장지, 지뢰밭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마인필드를 광석매장지로 해석하느냐 지뢰밭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어. 희망은 광석 매장지처럼 광물이 쏟아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그러나, 아빠는 마인필드를 지뢰밭으로 번역했어. 문맥적으로도 그렇고, 지뢰밭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듯이, 희망은 지뢰밭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뜻이야." 

 *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참조

 **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표기


희망을 붙잡기 위해 꿈을 꾸다

나는 딸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상당수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영어공부의 어려움은 더 이상 개인이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나 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풀고 해결해야 할 공적인 문제였다.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깨달음과 영어공부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라는 생각의 전환은 내가 그동안 잊어버렸던, 잊고 지냈던 영어의 왕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이후에 나는 "어떻게 영어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을 생각했고, 영어의 왕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나는 또한 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 희망은 새로운 방법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한 확인이었다. 만약 올바르고 완전한 방법을 찾는다면 영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그 희망을 붙들고 싶었다.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희망을 "가시철사"로 보호하고 싶었다. 나는 희망을 붙들기 위해 꿈을 꾸었다. 한국의 영어교육문제 해결할 전략과 방법으로 이른바 "영어의 왕도"를 찾겠다는 꿈과 목표.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면 마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처럼 내가 나아갈 방향과 거리를 보여주고

잘 못 길을 가면 경고음을 들려줄 것 같았다. 나는 꿈이 이루어질 미래를 상상하며 비전을 그렸다. 그러나, 꿈과 목표는 내가 나아갈 방향과 길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켜고 운전해도 주의하지 않고 딴 곳에 마음 두면 출구를 놓쳐 되돌아가듯 나는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갈 때가 많았다. 그 당시 나는 꿈과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철학, 언어학, 영어교육학 등 관련학문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영어교육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꿈과 목표를 이룰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스라엘 교육을 배우고, 또 한국에서 교육철학을 공부하며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딸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 이외에는 꿈과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친 경험이 없었다. 나는 언어에 대한 이전의 생각과 패러다임에 머물렀고, 자꾸만 이전의 생각의 관성에 따라가려고 했다. 이로 인해 나는 꿈과 목표에 걸맞은 적절한 전략방향을 찾지 못한 채 시행착오를 겪었고 난관에 부딪혔다. 이 길이 맞을까, 저길이 맞을까 기웃거리며 되돌아가기도 했다


꿈의 다섯 가지 의미를 찾다

나는 "꿈이 무엇일까?"생각했다. 꿈을 영어로 DREAM이다. 나는 DREAM의 다섯 알파벳(D, R, E, A, M)을 생각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대표하는지를 생각했다. 

D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들을 떠 올렸다. Day, Deep, Do, Define,  Dry 등 몇 가지 단어들이 떠 올랐다. 이 중에서 '정의하다'의 뜻을 가진 Define이 D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R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Rest, Rain, Reach, Rise 등등. 이 중에서 '도달한다' '이루어진다'의 뜻을 가진 Reach이 R의 의미를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꿈은 결국 '이루어진다'라는 점을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E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Eye, Expand, Expect, Expanse, Earth 등등. 이 중에서 '기대한다'라는 뜻을 가진 Expect가 E의 의미로 적절할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꿈이 영어교육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발전,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할' 필요가 있었다. 

A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Across, Align, Appear, Attribute, Awesome 등등. 이 중에서 '자질, 속성'의 뜻을 가진 Attribute가 A의 의미를 잘 드러낼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의 '자질과 속성, 더 나아가 나의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M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떠 올렸다. Make, Maximize, Maintain, Miss 등등. 이 중에서 '극대화하다'의 뜻을 가진 Maximize가 M의 의미를 잘 드러낼 것 같았다. 나는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내가 개발한 자질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꿈의 다섯 가지 의미를 생각했다. 정의하다. 이루어진다. 기대하다. 자질과 속성. 충분히 발휘하다. 

비록  DREAM의 다섯 알파벳을 대표하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선정하고, 이것은 단어들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일종의 '언어놀이'이지만, DREAM의 다섯 알파벳은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정의하고, 꿈이 이루어진다라는 확신과, 꿈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기대와 소망,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자질과 역량을 개발하고, 또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질과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야 함을 시사하였다. 나는 다섯 가지 꿈의 의미를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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