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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원 Sep 21. 2023

길 위에서 길을 잃다

좋은 추억과 스토리텔링의 차이


2023년 9월 18일(월), 새벽에 떠오른 <길 위에서>라는 영시에 어울릴 단어를 찾으려 아들 방에 갖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고 책장에 꽂힌 한시 책을 보았다. 오래전, 직장동료가 선물한 책이었다. 나는 첫 페이지를 펼쳤다. 매화를 주제로 쓴 시였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인가 어딘가에 남기고 싶은 말에 매화는 어쩌고 저쩌고라고 적었던 것이 생각나 그때 무엇이라고 적었는지 궁금하여 졸업앨범을 찾았다. 앨범에는 내가 적은 글은 없고, 나와 친구들의 앳된 얼굴이 사십 년 세월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그때의 수많은 추억들과 함께.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난 추억을 떠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토요일 아파트 열린 장터 12시경이었다. 아버지가 탕수육 '소'자 달라고 하는 말에 옆에 있던 꼬마아이가 "그럼 탕소육이군요"라고 말했다. 또 옆에 있는 저울에 손을 내밀며  "이것은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저울에 나온 어떤 숫자를 말했다. 꼬마는 "그럼 얼마예요"라고 묻고 바빠 대답하지 못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하듯 "사람의 손이라서 얼마라고 할 수 없군요"라고 말했다. 꼬마 아이의 기발한 상상과 질문에 나는 싱긋이 웃었다. 이것은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좋은 추억은 자신을 미소 짓게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타인을 미소 짓게 한다


길 위에서 길을 잃다

9월 16일 토요일, 오전 내내, 점심도 거른 채, 화정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다듬었다. 2시에 도서관을 나왔다. 4시에 선정릉역 근처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화정역으로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은행에서 돈을 찾았다. 김밥이라도 먹고 갈까, 망설이고 있었는,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언제 와"

"오우, 지금 화정 출발하려고, 3시 50분 예정"

"3시 예식인데"

"오, 그래 승용차로 갈게"

예식시간을 한 시간 늦게 4시로 착각한 것이었다. 전철보단 승용차가 빠를 것 같아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승용차를 탔다. 좁은 길을 나와 대로에 진입했을 때, 목적지를 검색했다. 

"내비게이션의 지도 버전이 오래되어 길안내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길안내를 받으려면 지도를 업데이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도를 업데이트하라는 안내 문구였다.


나는 앞을 보면서 내비게이션 메뉴를 보며 지도를 업데이트할 방법을 찾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보았다. 내비게이션은 업데이트할 사항을 보여주었다. 확인을 눌렀다. 내비게이션은 진행표시를 보여 주며 이것저것을 업데이트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내비게이션은 재부팅을 했다. 재부팅이 끝나자 메뉴로 가서 목적지를 검색했다. 앞에서 보았던 안내 문구가 다시 떴다. 자동차는 가양대교를 지나 올림픽 도로로 들어섰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밀렸다. 어떻게 할까? 여의도를 지나면 정체가 풀릴 것 같기도 하였고, 강남으로 들어가면 막힐 것 같기도 했다. 인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전철을 타고 가는 방법을 생각했다. 교통상황과 소요시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동차는 염창동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선유도공원에 주차하고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선유도공원 사인을 보고 올림픽도로에서 나왔다. 회전교차로가 보였다. 이전에 와 익숙했다. 굴을 지나자 선유도 공원이 나왔다. 차를 주차하고 작은 도로로 나왔다. 운동장이 보였다. 2009년 8월에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곳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아내와 나는 비로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았다. 불어난 강물에 막대기, 종이 등이 휩쓸려갔다. 멀리 북한산, 가까이에 남산이 보였다. 높은 빌딩들. 아내와 나는 선착장에서 나와 주차장과 운동장 사잇길을 걸었다. 운동장에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돌을 툭 찼다. 나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 트렁크에서 테니스 공을 꺼내 운동장으로 갔다. 아들에게 공을 던졌다. 아들은 딸에게 공을 던졌다. 아들과 딸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신나게 놀았다. 나도 그들의 놀이에 함께 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놀이에 끼어들었다. 아들은 나에게 공을 던졌고, 나는 하늘 높이 공을 던졌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를 신경 쓰지 않고 공놀이를 했다. 공을 던지고 받는 동안 빗물이 얼굴에 떨어지고 옷은 젖어 갔지만, 나는 공놀이를 즐겼다. 오히려 비로 인해 공놀이는 더 재미있었다. 비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비속으로 들어가니 비는 더 이상 제약이나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육교로 갔다. 선유교에 올라서니 한강, 빌딩,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온 서울이었다. 사진을 찍었다. 아주머니와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선유도역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앞으로 쭉 가셔서 왼쪽 길로 가면 되는데, 조금 복잡하니 그곳에 가셔서 물어보세요."

"얼마나 걸릴까요?"

"10분, 아니면, 15분쯤"

"네, 감사합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도로 아래를 보니 버스가 지나갔다. 걸어가느니 버스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선유도역에 가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동작역이나 다른 역에 가겠지." 육교를 내려가는데, 605번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기사님에게 선유도역 가는지를 물었다. 기사님은 간다고 말했다. 버스는 조금 가다가 도로를 빠져나왔다. 선유도역에 도착하니 3시 6분. 예식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철을 기다렸다. 일반열차였다. 승무원은 "동작역까지는 일반열차가  급행열차보다 앞서 갑니다."라고 말했다. 동작역에서 내려 급행을 기다렸다. 다른 선로에 선 급행열차를 탔다. 선정릉역에 내려 출구로 나왔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예식은 끝났다. 나는 카운터에 연회장이 몇 층인지를 물었다. 3층으로 갔다. 연회장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빙하는 청년의 안내를 받아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지난해 본 친구도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처음 보는 친구도 있었다. 식사 중간에 신랑신부가 단상에 나와 하객들에게 인사했다.

"바쁘신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나는 박수를 크게 쳤다. 


멀리서 온 친구, 서울에 다른 일정이 있는 친구는 먼저 가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커피점에 갔다. 한 친구가 최근에 캐나다 밴쿠버 친구 집을 방문하고, 로키산맥을 여행한 이야기를 했다. 로키산맥 빙하가 빠르면 10년, 늦으면 30년에 녹을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마산으로 내려가는 친구와 함께 9호선 전철을 탔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친구를 배웅하고, 다시 전철을 탔다. 선유도역에 내렸다. 선유도 공원 표시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제법 어두웠다. 나는 아저씨에게 선유도공원 가는 길을 물었다. 

"쭉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횡단보도를 지나 도로를 따라 앞으로 쭉 걸었다. 가는 방향도 알고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 마음이 편했다. 조금 걷다 보니 언덕이 보였다. 내가 탔던 605번 버스가 오고 있었다. 나는 노들로 아래 산책 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 숲에 가려져 버스 주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노들로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노들로에 서니 내려왔던 육교가 보였다. 육교로 올라갔다. 노들로와 올림픽도로에는 많은 차들이 전조등을 밝히며 달리고 있었다. 달려오는 불빛에 차들이 어떤 모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다양한 영어공부법 중에서 어느 방법이 나에게 효과적이고, 적절한 지를 판단하거나 구분하기 어렵듯이. 

 


지금은 질문의 시간

올림픽 도로에서 목적지는 알았으나 정보가 부족하여 길을 잃었던 토요일 에피소드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1. 나는 왜 3시를 4시로 착각했을까?

2. 나는 왜 길 위에서 길을 잃었을까?

3. 나는 왜 내비게이션 지도를 업데이트하지 못했을까?

4. 나는 왜 선유도 공원에 주차했을까?

5. 나는 왜 선유도역까지 걸어가지 않고 버스를 탔을까?

6. 나는 왜 귀갓길에는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었을까?


7월 28일, 금요일 아침이었다. 오랜 만에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에 다녔던 친구였다. 반가웠다. 친구와 나는 그동안 소식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대화했다. 친구는 딸이 9월에 결혼한다고 했다. 그날 교회친구들로 이루어진 '아가페'라는 이름을 가진 카톡방에 친구 딸의 결혼소식이 떴다. "○○이 딸 9.16.(토) 서울에서 결혼한대~" 나는 댓글을 달았다. "기쁜 소식, 축하해!!" 9월 16일이면 아직 시간도 남아 있고, 매일 공공도서관에 다니며 글을 쓰며 바쁘게 보내고 있었기에 시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8월 28일 월요일 오후에 나는 친구에게 결혼식이 몇 시인지 묻는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9월 16일 오후 3시라고 알려줬다. 나는 시간을 보았다. 오후 3시. 그런데, 왜 시간을 4시로 착각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두세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본다. 하나는 내가 오후 3시를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후 3시의 인상(이미지) 또는 관념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오후 3시는 점심이 지난 시간이다라는 시간에 대한 인상 또는 관념. 다른 하나는 9월 11일 월요일에 친구가 단체 카톡방에 올린 예식장 오는 길 안내에 4F를 4시로 인식했거나 4만 보고 4F을 함께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아니면, 그 당시 내가 글쓰기에 주의를 집중하여 다른 일들에 관심을 두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두 번째 질문과 세번 째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갈 목적지(예식장)와 방향을 알고 있었으나, 그대로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차를 한강 변 어딘가에 주차하고,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하지 못했기에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내비게이션 메뉴를 보며 업데이트를 시도했지만, 올바른 방법을 몰랐다. 블루링크에 가입한 경우 저절로 지도가 최신화되는 줄 착각했고, 현대자동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지도를 SD카드에 다운로드한 후에 업데이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네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2009년 8월에 가족과 함께 선유도공원에 나들이 갔었고, 올림픽도로를 이용하며 그 주변지역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선유도역으로 오면서 육교에서 아주머니에게 선유도역 방향과 소요시간을 물었고, 역까지 가는 방향과 소요시간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아주머니께 묻지 않고, 방향과 시간을 몰랐다면 나는 아마 버스를 타지 않고 역까지 걸어서 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식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올 때는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주말이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내가 예식장으로 가는 길과 그 과정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는 지나간 경험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편안하고 여유롭게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물음에는 답이 있다

사람은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여 해결방안을 찾는다. 지금 인류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보건의료위기와 공동체의 위기,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평화의 위기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여 그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원인들을 찾고, 그 원인들이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근본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원인들을 분석하고 근본원인을 찾기 위해선 물어야 한다. 모든 물음에는 답이 있다.

비록 한 번의 물음으로 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묻고 물으면

점점 문제가 명확해지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방향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질문하기, 이것은 모든 문제 앞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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