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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원 Jun 30. 2024

꿈도 때론 길을 잃는다

도시농촌 전선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너도 나와 같구나' 생각하며 비둘기를 찍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다른 비둘기가 날아와 곁에 앉았다. 전선줄은 위아래로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비둘기들은 한동안 같이 앉아 있었다. 한 마리가 위로 날아가니 덩달아 다른 비둘기도 위로 올라앉았다. 얼마간 같이 숲을 보더니 먼저 올라간 비둘기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조금 뒤 다른 비둘기도 내려갔다. 그들은 몇 번을 반복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 한 마리가 숲으로 날아갔고, 다른 비둘기도 따라 날아갔다. 숲에서 비둘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가슴을 열어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편으로는 마음의 불을 끄려는데 다른 한편에서 이름 모를 불길이 솟았다.  


비둘기 두 마리가 같이 앉아 있다(고양시 화정동, 국사봉)

6월 중순에 어느 모임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날 강사는 그가 쓴 단편들 중 『남부』등 두 작품을 다루었다. 그의 글은 유월 마지막날 먹었던 복숭아처럼 상큼했다. 그 이후 그의 소설집 두 권을 샀고 그의 문학에 관한 강의도 유튜브에서 들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픽션들』작품에 대한 해설에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열일곱 개의 단편들은 크게 <문학 이론>을 소설화시키고 있는 작품들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소설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두 범주로 나뉜다."라는 말이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황병화 옮김, p.285). 오늘 아침에 신유진 씨의 산문집 『상처 없는 계절』에서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에 관한 글을 읽었다. 보르헤스는 "꿈이 가장 오래되고 복합적인 문학장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1년 7개월 전, 제2인생이 시작되는 날 새벽에 저는 꿈을 꾸었다. 중동의 어느 나라 해변 동굴을 걷고 있었다.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고 동굴 입구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어요. 입구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 STOP이라는 표지가 서 있었다. 교통신호표지판 같았는데, 왜 동굴에 이 표지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이에 잠을 깼다.


나는 꿈꾸기를 좋아했다. 꿈이 있을 때 일찍 일어났고 걸음걸이에 활력이 넘쳤다. 꿈이 없을 때 생기를 잃고 방향을 잃었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도 꿈이 실현될 미래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하지만 지금 꿈을 회의하곤 한다. 오랜 기간  꿈을 쫓아왔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얕고 역량은 충분하지 않다.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오늘 유월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반년이 지났다. 내일 올해 하반기가 시작된다. 장맛비가 그치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단풍이 물들면 금세 올해도 지날 것이다. 점점 세월의 흐름에 무감각해지지만, 계절의 변화만큼 제 꿈도 자라고 성숙해졌으면 한다.


6월 중순부터 다시 맨발 걷기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기구에서 두발을 교차하며 하늘 걷기를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언니 모시러 왔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운동하던 아주머니는 "내 못 산다"라고 말하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따라갔다. 유월의 마지막  날,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불을 지퍼"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내 못 산다"라며 못 이기는 척 따라가고 싶다. 


                                  아파트에서 바라본 북한산, 바로 앞은 창릉신도시의 끝자락(고양시 행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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