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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원 Apr 06. 2024

이 봄이 가기 전에

우리는 언제 비둘기처럼 나란히 앉아 봄을 즐길 수 있을까?  

(고양시 행신동 성사천)

지난주 금요일 오후, 북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간식도 먹고 쉴 겸 베란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대뜸 추억이 많은 것도 서글프다며 말을 걸었다. 그는 박물관에 근무하며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며 유적을 발굴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유적 발굴 방법, 습기가 많은 한국의 기후가 유물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질문을 하며 관심을 기울었다. 우리는 30분 이상 대화했다.


봄은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 꽃을 피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세상 정원에 꽃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씨가 뿌려져야 싹이 나고 줄기와 가지가 나며 결국 꽃이 핀다. 열매가 맺힌다. 


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동백꽃은 지고 목련, 매화, 벚꽃이 활짝 피었다. 개나리와 배꽃도 한창이다.

꽃은 독특한 자태와 향기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네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가져", "네 삶을 마음껏 즐겨", "어떤 꽃이든, 주변의 산,들과 어울리어 풍경이 돼."


요즘 말 거는 사람이 적다. 말을 걸지 않는 까닭은 혹 말 거는 사람은 약자 또는 을이라는 인식 때문은 아닐까.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라는데 오해나 편견, 굳어진 마음은 어디에 버려야 할까?


말을 걸자. 혹 곁에 사람이 없거든 바람에게라도 말을 걸자.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어떤 곳에 머물렀느냐고.


방금 보았던 쪽지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방을 뒤지고 주머니를 살폈다. 기억을 뒤지어 되돌아갔다. 흔적이 없다. 나를 두고 어디로 갔을까? 말랑말랑했던 찹쌀떡은 냉장고에 있던 사이 딱딱해졌다. 내 쪽지라고, 내 기억이라고, 내 시간, 또 내 몸이라고, 어찌할 수 없겠지. 계란은 깨뜨려져야 먹을 수 있고 밀알은 썩어야 열매를 맺듯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자. 지나가는 바람과 고양이, 날아가는 비둘기에게 말을 걸자. 

말을 거는 사람은 약자나 을이 아니다. 말을 거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건다. 


지난 월요일, 점심을 먹고, 나는 천변 뚝길을 걷고 있었다. 시선을 끄는 한 나무가 있었다. 매실나무였다. 뿌리는 같은데 분홍색과 흰색 두 색깔의 꽃을 동시에 피운 나무. 보통 한 나무에 한 가지 색깔이 피고, 두 색깔의 꽃이 피는 경우는 드물다. "혹시 접을 붙였나?" 나는 줄기를 살폈다. 붙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행인들도 신기하다며 가는 길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다르기에 아름다웠다. 두 색깔을 가졌기에 더 아름다웠다. 

나무가 말할 수 있다면, 나무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봄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다름과 차이가 만들어 내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조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나무 곁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는 왜 이렇게 이 좋은 봄날, 넋두리를 하며 글을 쓸까? 

말을 걸으러, 이 봄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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