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초인종을 누르자 철이 형이 문을 열고 나왔다. 문고리를 잡은 채 짖궂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는 말했다.
“병신 새끼.”
나는 헛웃음이 났다.
“좀 들어가자.”
철이 형이 길을 비켜주었다. 나는 현관으로 들어섰다. 철이 형의 집은 평범한 4인 가족용 아파트였다. 좌측에 부엌과 방 하나, 우측에 거실과 화장실, 정면에 서로 마주 본 방문 한쌍. 벽과 천장은 조금 때가 탄 종이 벽지가 발려 있었고 전반적으로 청소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짐은?”
철이 형이 내 손이 빈 것을 보고 물었다.
“집에 있어.”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철이 형이 내 옆에 앉았다.
“그럼 짐도 못 꺼내고 쫓겨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형은 크게 웃었다.
노노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분노했다. 현관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이 발이되도록 비는 내게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온갖 욕들을 뱉어 내었다. 상류층과 노는데 특화된 노노는 은근히 고상한 구석이 있어서 비속어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라이더와 만나고 목덜미와 가슴에 피멍을 남긴 채 돌아온 날에도 그 정도로 화를 내지는 않았었는데.
한참을 쏟아낸 후 노노는 신발을 신었다. 나는 뒤따라 나가기 위해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다리에 쥐가 난 탓에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누가 움직이랬어?”
날 선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다시 무릎을 꿇었다.
“차 키 줘봐.”
나는 주머니를 뒤져 순순히 자동차 열쇠를 내어 주었다.
“나 올 때까지 움직이기만 해봐.”
노노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세게 닫았다. 나는 속으로 60까지 센 뒤 무릎을 펴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대체 캥거루의 생존에 얼마를 걸었길래? 나는 저린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캥거루가 죽은 게 내 잘못인가? 지가 돈 걸었지 내가 돈 걸었나? 나는 큰 소리로 노노를 욕하다가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 그것은 노노가 아니었지만, 문득 불안해졌다. 만약 여기서 노노와의 교류가 끊기게 된다면?
노노가 머니버켓챌린지에 실패하는 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알려준 예측 결과가 틀렸다고 해서 히스테리를 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은 내 입장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노노의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노노의 귀가는 늦었다. 나를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밖에서 시간을 끄는 것이 분명했다. 차 한 잔 하고, 밥 한 끼 하고, 어쩌면 자신이 거느린 스폰서들 중 하나를 만나 드라이브라도 갔을 지 모를 일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마치 지금까지 쭉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았다. 노노는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저기, 누나?”
“나가.”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뭐라고 했는지 다시 물었다.
“나가라니까.”
그래서 나왔다.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야 노노가 차키를 가져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서 받아올까 고민하다가 괜히 노노의 신경만 건드리게 될 것 같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틀린 비밀번호라며 삑삑거렸다. 나는 짜증을 내며 번호를 다시 입력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입력해도 소용 없었다.
비밀번호를 계속 틀리자, 도어락에 1분동안 비밀번호를 입력할 수 없다는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안 그래도 뭣 같은 데 별 게 진짜. 나는 현관문을 걷어찼다.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노노에게 메세지가 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거기 이제 너희 집 아니야. 차키도 받으러 올 생각하지 마.]
나는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1분이 지나 다시 비밀번호를 입력해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집 비밀번호를 아주 정확하게 입력하였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2분을 기다리라는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노가 나를 자신의 집에 무릎 꿇려두고 비밀번호를 바꾸고 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노노는 메세지를 읽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물론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튿날 노노가 빌려줬던 신용카드가 먹통이 됐다. 내 통장 잔고는 400만원. 웬만한 원룸 보증금으로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근 1년간, 사실상 소득이 전혀 없었다. 내 소유의 모든 것은 노노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머니버캣첼린지 예측 성과금이라도 잘 모아둘 걸. 노노가 준 현찰은 술값으로 옷값으로 잡다구리한 사치품 값으로 전부 빠져나갔다. 술은 오줌이 되어 없어졌고 옷들은 집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꺼내 올 방법이 없었다. 노노의 오피스텔에 찾아가 보았지만 경비가 막아섰다. 내가 스토커라는 주민 제보가 있었다면서,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앞으로 다시 찾아와도 신고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며칠 삐져 있다가 말겠지, 싶었다. 혹시라도 호출이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노노의 집 근처에 있는 숙박업소에 머물렀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삼일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읽음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 노노와의 메신저 방 대신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거리는 많았으나 성에 차는 것은 없었다. 가게에서 일할 때는 손님에게 술만 따라주고도 하루 40만원은 벌었는데. 아르바이트로는 하루 10만원도 벌기 힘들어 보였다.
며칠이고 숙박업소에 머물며 저축을 까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집에는 돌아가기 싫었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대학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서 내 지인이라고는 호빠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 뿐이었다.
나는 철이 형에게 연락해 보았다. 나를 받아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가게에서 이런저런 업무 팁 같은 것도 알려주고, 종종 술도 먹던 사이였으나, 아무래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직장에서 만난 사이이다 보니 나를 껄끄러워 할 게 분명했다. 내가 가게에 나가지 않게 된 이후로는 연락도 뜸했다.
전화를 받은 철이 형은 예상 외로 흔쾌히 자신의 집에서 묵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기간도 딱히 정해두지 않은 채였다.
*
“까짓 거 또 벌면 되지. 다시 출근해.”
철이 형이 오징어를 씹으며 말했다.
“거길 어떻게 다시 가. 내가 어쩌고 나왔는지 몰라?”
“그러니까, 새끼야. 스폰을 끼고 나갈 거면 퇴로를 마련해 놓고 설쳤어야지.”
철이 형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우리는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과자를 사들고 나오던 여자가 스폰 소리를 듣고 우리가 앉은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내가 마주보자 여자는 제 갈 길을 갔다.
“노노랑 사귀느니 어쩌느니 할 때부터 알아봤다. 호빠가 남친 만들러 오는 데야? 애완동물 분양소지.”
나는 오징어 봉투를 뒤적였다. 비어 있었다. 철이 형은 말이 너무 많았다. 나는 맥주캔을 들어 남은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하긴, 창녀 남창 커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또 무슨 헛소린가 싶어 먼 산을 보았다.
“깔깔이랑 호미 사귀는 거 아냐?”
나도 모르게 고개가 형 쪽으로 돌아갔다.
“스폰이겠지.”
“아니야, 둘 다 일 그만 뒀던데?”
깔깔이가 일을 그만 뒀다고? 호미와 마찬가지로 깔깔이는 소문 난 맛집이었다. 소위 ‘잘 대주는’ 부류의 종업원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나이도, 얼굴도 따지지 않고 돈만 주면 무조건 콜이었다. 때로는 1차로 마무리하려는 손님을 어떻게든 구워삶아 함께 나가기도 했다.
“노노는 꾸준히 출근했잖아.”
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철이 형이 덧붙였다. 나는 형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 가?”
“술 좀 더 사오게.”
편의점 문을 여는데 철이 형이 자기 맥주도 사오라고 외쳤다. 본부대로 맥주 두 캔을 사서 나와보니 깔깔이가 와 있었다. 깔깔이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철이 형은 내가 어떻게 일을 그만 두게 됐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형이 맥주 한 캔을 더 주문했다. 나는 방금 사 온 맥주들을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에게 건네주고 내 몫을 사러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깔깔이의 입꼬리 한쪽이 비웃듯이 올라갔다.
저 표정. 내가 깔깔이를 싫어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녀석은 괴상하게도 사람을 볼 때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올리거나 눈썹을 한쪽만 치켜세웠다. 철이 형은 그런 행동을 자신감이 있어보인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거만해 보일 뿐이었다. 표정만 희한한 것이 아니라 하는 짓도 이상했다. 녀석은 호빠 대기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지를 내리고 허리를 흔들어대곤 했다. 생각해보면 가게에 돌아가기 껄끄러워진 것도 다 깔깔이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출근한 날이었다. 노노는 이미 깔깔이를 초이스해 놀고 있었다. 나는 20대 손님들의 생일 파티에 불려들어갔다. 네 명의 손님들은 각자 선수들을 한 명씩 끼고 앉아 축포와 샴페인을 터뜨리고 케이크에 초를 밝혔다.
손님들은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선수들은 분위기에 맞춰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나를 초이스한 사람이 생일파티의 주인공이라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다른 선수들처럼 방 한구석에서 아이돌 댄스를 춰야 했을 것이다. 파티의 주인공은 내가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내 팔을 꼭 끌어안고 선수들이 추는 춤을 감상했다.
평소라면 나 역시 꽤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손님들 얼굴도 반반하니 연령도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온통 노노와 깔깔이가 들어간 방에 가 있었다. 손님 중 한 명이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며 채근했다.
“남자는 잘생긴 게 재밌는 거야.”
내 손님이 한 마디 하자, 아무도 더 이상 내게 재밌는 얘기좀 해보라며 압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 같았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손님이 따라주는 술만 들이켰다.
“너 술 진짜 잘 마신다.”
그날의 주인공이 감탄했다. 다른 손님들이 맞장구 쳤고 선수들도 자기 주인들을 따라했다.
“우리 누가 더 잘 마시나 내기할래? 내가 이기면 오늘 공짜인 거고, 네가 이기면 팁 세 배로 줄게.”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였다. 손님들 역시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며 나를 자극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팁을 얼마 받을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바로 단골 손님을 깔깔이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그야말로 돈과 섹스에 미친놈이었다.
나는 손님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곧장 샷을 한잔 들이켰다. 손님도 나를 따라 마셨다. 우리 둘은 거푸 잔을 비웠다. 얼마나 마셨을까, 도전자가 항복을 선언하고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경쟁을 부추기던 친구들이 혼자서 괜찮겠느냐며 같이 일어서려 했지만 손길을 뿌리치고 혼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앉아 있다가,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로 향했다. 여자 화장실 앞에 생일 맞은 손님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에 일단 소변을 보고 나온 후 룸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손님의 일행들과 선수들이 뛰쳐나오고 나는 실장님에게 보고하기 위해 데스크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게를 함께 나서는 노노와 깔깔이를 목격했다. 나는 아주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머릿속에 대기실에서 깔깔이가 고추로 프로펠러를 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몸은 내 머리가 무언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움직였다. 재빨리 출입문을 나서려는 깔깔이에게 뛰어가 그의 낭심을 걷어찬 것이다.
깔깔이는 가랑이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노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잠시 뒤 매니저실에서 실장님이 튀어나왔다. 물론 가드들을 대동한 채였다.
“니 손님은 어쩌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손님 술먹고 기절했어요.”
나는 어눌하게 답하고는 실실 거렸다.
“너, 지금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실장님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차갑고 무서워 보였는데, 그 때는 왠 쪼끄만 여자가 내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우스워 보였다.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실장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평정심을 잃고 내 행동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듣기 싫었다. 오른쪽 팔을 뻗어 실장님의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가드들이 달려들어 나를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에서 훔씬 두들겨 맞았다. 내가 구토를 하기 시작하자 가드들은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가게로 돌아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엠뷸런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이 들었다.
노노는 내가 씩씩거리는 모습과 바닥을 뒹구는 깔깔이의 모습이 너무 웃긴데, 실장님의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웃지 못했다고 훗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가드들에게 끌려나간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결코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잤을까, 안 잤을까? 나는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깔깔이를 노려보았다. 녀석은 호미와 함께 근방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동거중이라고 했다. 때문에 예전부터 철이 형과는 꽤나 자주 만났던 모양이었다.
“돈은 제법 모아 뒀나 봐?”
내가 묻자, 깔깔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하긴 맛집 커플이 가난할 리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녀석은 배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쑥쓰럽게 미소 지었다. 늘 천박하게 웃던, 내가 아는 그 깔깔이가 맞나 싶었다.
“자리 있으면 쟤도 좀 데려가라. 이 새끼 팽 당하고 할 거 없대.”
철이 형이 내 어깨를 쳤다.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므로 나는 가만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