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버켓챌린지

3장

by 류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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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버켓첼린지의 회원은 크게 세 종류의 사람들로 나뉜다. 불의를 참지 못하거나, 공감능력이 뛰어나거나, 책임감이 강하거나. 나는 캥거루를 불의를 참지 못하는 스타일로 보았다. 잉여인간이라면 세상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불사조를 만나고 얻은 지혜였다.


불사조는 메신저로 5번 테이블이라고 알려왔다. 음식점에 도착해보니 웬 투블럭 컷을 한 거구가 벌써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 둔 상태였다. 그가 불사조였다. 나는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젓가락을 빨던 거구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왜 말을 거는 지 모르겠다는 듯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블러드버켓첼린지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거구는 벌떡 일어나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테이블이 흔들렸다. 옆 의자에서 가방이 떨어졌다.


거구는 키가 나와 비슷했다. 회색 티셔츠 안에 튜브라도 낀 듯 몸매가 울퉁불퉁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었다. 여자라고 들었는데. 가슴께를 흘끗 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거구는 떨어진 가방을 주우려 했지만 살 때문에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몰래 고개를 저었다. 불판에 올려진 삼겹살에 핏물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나는 삼겹살이 탈 까봐 거구의 가방을 주워 주었다.


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는 거구를 관찰했다. 집게를 잡은 팔뚝을 뚝 잘라다 팔아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씩 웃었다. 거구도 따라 웃었다.


“맛있겠네요.”

“다 익었어요.”


거구가 내 앞접시에 고기를 옮겨 담았다.


우리는 말 없이 고기를 먹었다. 불판을 두 번 갈 동안 소주를 두 병 마셨다. 나는 거구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내 경험상, 상대방이 화제를 먼저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 만나달라는 쪽지에 반응하는 첼린저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부류다. 다만 표현하지 못할 뿐.


어떤 이들은 앞으로 치뤄야 할 일이 두려워서, 어떤 이들은 자신처럼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고 싶어서 자리에 나온다. 내가 이들의 첼린지 결행 결심을 이끌어낼 필요는 없다. 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머지않아 죽을 사람 앞에서 분위기 띄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 글 어땠어요?”


거구는 자신이 쓴 소설을 한 편 보내 줬었다. A4용지로 서른 장도 넘는 긴 글이었다. 분량을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읽기는 읽었다. 그게 만남의 조건이었으니까. 당연히 노노가 닥달하지 않았다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땠어요’는 짧지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 충분한 질문이었다. 읽는 동안 세 번 잠들었다. 대충 가수의 꿈을 키우는 트렌스젠더가 이런 저런 차별을 받다가 결국 꽤 큰 무대에 오르게 되는 내용이었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을 뒤져 할 말을 찾았다. 묻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본인이 트랜스젠더인가요? 그러나 트렌스젠더가 맞건 아니건 실례되는 말이 될 것 같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무대에서 관객들한테 뛰어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맨정신으로 본 부분이 처음과 끝부분 뿐이었으니, 기억에 남는 것도 처음과 끝부분 뿐이었다.


“그렇죠? 그 부분에 힘을 많이 줬어요. 제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거구는 내 감상평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품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가게에서 일 하며 익힌 기술로 대화를 유려하게 이끌어갔다. 적절한 눈맞춤. 사람 눈을 바라볼 때는 눈동자를 보지 말고 미간을 봐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에게 눈빛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적철한 추임새. 정말요? 진짜 그렇네요. 와, 전 몰랐어요. 더불어 적절한 고갯짓.


거구가 첼린지를 실행하는 날 노노는 드론을 띄웠다. 드론은 공원으로부터 근처 번화가까지 200미터 정도를 날아가 3층 건물 옥상에 선 거구를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주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비슷한 높이의 건축물들이 주욱 100미터 가량 늘어서 있었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거구는 준비해 온 화염병들에 불을 붙이더니, 좌우로 던지기 시작했다.


불 붙은 이들은 발버둥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불을 옮겨 붙였다.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달아나려 했으나 인파에 막혀 오도가도 할 수 없었다. 서로 밟고 밟혔다. 상점 안으로 숨어든 사람도 있었으나 뒤이어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 쥐포처럼 납작해지고 말았다.


거구는 그 모습을 내려다 보다가 자기 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오른손에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거구는 한 마리 불새처럼, 비명을 지르는 인파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터의 부싯돌에는 불꽃이 튀지 않았다. 거구가 겁을 먹고 라이터를 바닥에 떨어트린 탓이었다.


한참이 지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거구를 포위했을 때에야, 그는 바닥에 놓인 라이터를 주워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경찰들은 소화기로 금새 불을 껐고, 거구는 살아남았다. 그렇게 거구는 불사조가 되었다.


노노는 거구가 죽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나는 술자리에서 그가 죽을 용기가 없는 사람임을 직감했다.


거구의 입에 가속도가 붙을 무렵이었다. 말하는 속도도 술을 마시는 속도도 고기를 먹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고기를 조금 더 시켰다. 상은 어느새 술병들로 가득 채워졌다. 아르바이트생은 주문을 접수하고는 술병들을 치워주었다.


“방금 보셨어요? 저 사람 눈 돌아가는거. 돼지 같은 새끼들이 존나 많이 먹네, 이런 표정 아니었어요?”


거구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소수자들을 배려할줄 모른다라는 말로 부터 사실은 근육이 너무 많이 붙은 몸이 더 건강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지나 과연 본인이 남성이었어도 같은 시선을 받았을까 라는 말로 비약했다.


그의 말에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자신이 습작생에 머무는 것도, 멸시 받으며 사는 것도 전부 남 탓이었다.


거구는 혼자 신나게 떠들다가 잠들었다. 나는 계산하지 않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거구가 잠들기 전 내게 usb하나를 건네며 부숴달라고 부탁했다. 본인이 평생 쓴 작품들이 들어 있는데, 자기 손으로는 못 부수겠다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었다. 교과서에서 봤던 카프카, 이상 따위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나는 usb를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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