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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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와 순례길에 오른지 벌써 1년 가까이 되어 간다. 사실 순례는 나에게 주어지는 팁이나 노노가 따는 돈과는 눈곱만큼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이건 지극히 사적인 노노의 취미일 뿐이었다.
나는 노노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첼린저가 첼린지를 실행하는 장소를 구경하겠다는 생각을 어떤 미친년이 하겠는가. 하긴, 그걸 따라다니는 나 역시 적잖이 미친놈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다. 내가 순례길에 오른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노노가 가진 돈과, 노노의 예쁜 얼굴과, 노노의 쫀쫀한 아랫도리 때문이었다.
“진짜 그 때 화장실 괜히 갔잖아.”
침대에 베게를 대고 앉아 푸념하는 노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미안, 내가 시간을 더 정확하게 알아놨어야 되는데.”
나는 노노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노노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됐어. 언제는 첼린저들이 예고된 시간 지킨 적 있었나.”
노노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외계인들이 나와 사람들을 찢어 죽이는 흔하디 흔한 sf영화였다. 불러놓고 지 혼자 영화를 보고 있네.
나는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조금 아래로 가져가 노노의 가슴 위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뭐야, 간지러워.”
노노가 내 얼굴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손을 치우기는 했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다.
“너는 이번 첼린지가 몇 번째로 좋았어?”
노노의 좋다는 말은 내게 있어서 끔찍하다는 뜻이었다. 불사조, 라이더, 딸 바보의 첼린지가 내가 목격한 최악의 살해 현장들이었다. 이것들은 노노가 꼽은 최고의 순례길에 포함되는 것들이기도 했다.
“난 두번째.”
“진짜? 불사조랑 라이더랑 딸 바보도 이겼다고?”
“아니, 그것들 다 첫 번째고 캥거루는 두번째야.”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꽤 볼만 했나보네.”
녹색불이 켜진 횡단보도로 질주하는 자동차와 세 가지 역겨운 장면들을 떠올리니 속이 불편해졌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피로 물든 머릿속을 씻어내려면 아주 상쾌한 자극이 필요했다. 나는 노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뭐.”
노노가 샐쭉거렸다.
“누나, 나 상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상?”
노노는 짐짓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척 하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 많이 땄다며.”
“아직 결과 확실히 나온 것도 아니잖아.”
노노는 다시 보던 영화로 눈을 돌렸다. 나는 휴대전화를 빼앗아 높이 들어올렸다. 노노는 내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뒤엉켜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노노는 나를 깔아뭉게고 폰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나는 대자로 누워서 호소했다.
“스코어 맞췄잖아.”
“기다려봐. 지금까지 변동 없나 보고.”
화면 스크롤을 내리던 노노는 씨익 웃어보였다. 휴대전화를 침대 옆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는 내 골반 위에 올라 앉았다.
“아주 큰 상을 줘야겠는데?”
*
머니버켓첼린지의 존재 역시 노노를 통해 알았다. 양동이로 돈을 퍼서 머리에 들이 부을 만큼 큰 돈을 딸 수도 있는 비밀 도박 사이트였다.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사이트는 블러드버켓첼린지와 관련이 깊다.
베팅 방법은 스포츠 토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승패 여부와 스코어를 맞추면 돈을 딴다. 도박사들은 첼린저에게 돈을 건다. 첼린저가 죽으면 승, 죽지 않으면 패로 표기된다. 첼린저가 죽인 사람의 수는 스코어가 된다. 스코어를 정확히 맞춘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가장 가까운 숫자를 제시한 사람이 베팅금을 가져간다.
역대 베팅 금액이 가장 컸던 판에서 첼린저는 배를 가라앉혔다. 300명 가까이 죽었고 수 조원이 오갔다. 당시의 첼린지가 언론과 일반 대중으로부터 너무 큰 조명을 받는 바람에 사이트가 거의 폐쇄될 뻔 했다고, 노노는 말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300명이 수장되는 걸 보고 웃고 즐긴다고? 따위의 문제는 물론 이해할 수 있었다. 부자들의 취미생활이지 않은가. 내가 정말 믿을 수 없었던 건, 노노 같은 일개 창년이 이런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보통 창년은 아니었다. 노노가 끼고 있는 스폰서는 총 세 명이라고, 철이 형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옆에서 같이 듣던 깔깔이는 말했다.
“뭐야, 아침 점심 저녁이야?”
그리곤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말이 아주 헛된 소리는 아니었다. 노노의 집, 차, 명품 가방과 옷들은 각각 다른 스폰서에게 받은 것이었으니까.
“스폰서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노노와 막 순례길에 올랐을 무렵이었고, 그 때까지 나는 노노가 좀 헤픈 부잣집 딸내미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랐어? 노노 에이스잖아. 맨날 붙어 다니는 호미도 그렇고.”
철이 형은 눈을 크게 떴다.
“노노는 그렇다 치고, 호미한테 초이스가 들어온대요?”
깔깔이는 비웃었다.
“지는 아줌마랑 노는 새끼가.”
“우리 누님은 그래도 아름다우시잖아요. 20대 이국주랑, 50대 김혜수 있으면 당연히 김혜수 아니에요?”
“호미가 왜 호미인줄 알아? 아주 뿌리까지 뽑아버린다고 호미야. 에이스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
“그럼, 노노는 왜 노논데요? 잘 튕겨서?”
“아니, 노어노문학과라서.”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비위 맞춰가며 만나던 사람이 술집 여자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까닭이었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웃음소리가 단숨에 멎었다.
“손님 오셨으니까 나와서 준비들 해. 7번은 늘 가던 방으로 가고.”
실장은 그 말을 남기고 홱 나가버렸다. 왠지 모르게 무서운 여자였다. 복장은 화려했지만 표정은 언제나 차가웠다. 가슴도 작았다.
“장사꾼한테 장사하러 가네.”
깔깔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 자식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었다. 철이 형이 크게 웃었다. 깔깔이도 따라 웃었다. 나는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뒤로 한 채 노노가 기다리는 방으로 갔다.
노노는 정말 노어노문학과였다. 노노가 자기 이야기에 공감을 구하며 어깨에 손을 얹을 때마다 나는 방금 빤 옷을 걸레로 문지르는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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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일은 예전에 그만 두었다. 20대 이국주도, 50대 김혜수도 상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깔깔이처럼 야망이 있는 놈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중년 손님을 대접한 횟수는 손에 꼽는다. 보통 그런 손님들은 깔깔이가 데려갔다. 직접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항상 선택을 받았다. 그 녀석 한테는 중년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뭔가가 있었다.
나는 40대 후반의 손님 옆에 앉아 술을 따랐다. 노노도 깔깔이도 없는 흔치 않은 날이었다. 그 아줌마는 주로 남편 이야기를 했다. 일 핑계 대며 룸살롱 드나드는 이야기, 자기가 집을 비웠을 때 안방으로 숨겨둔 애인을 들인 이야기, 출장 간다고 거짓말 하고 아주 질펀하게 놀다 온 이야기.
나는 경청했다. 듣다 보니 손님 남편의 입장이 가슴 깊이 공감 됐다. 아줌마는 머리결도 푸석푸석했고 전신의 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윤곽으로 드러나는 가슴, 팔뚝 살. 이런 여자와 살면 바깥으로 나돌지 않고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이런데 처음이잖아.”
샷을 한 잔 쭉 들이키며 아줌마가 말했다.
“너만 놀줄 아냐? 나도 놀 줄 안다!”
비운 잔을 높이 치켜들고 손님은 자기 남편의 이름을 신경질 적으로 외쳤다. 아줌마가 내게 팔짱을 꼈다. 내 팔에 가슴을 밀착시키고, 얼굴을 쭉 들이밀었다. 커피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입냄새가 아주 잔혹한 수준이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랐다.
“얘 부끄러워 하는 것 봐.”
아줌마가 내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우리 나가서 놀까?”
나는 흠칫하여 손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철이 형의 말에 따르면 손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금기 시 되는 일이었다. 반항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조금 부드럽게 내리 깔고 말했다.
“조금 더 놀다 가시죠.”
“아니, 나는 지금 가고 싶은데?”
2차로 넘어가는 건 의무가 아니었다. 노노와는 밖에도 간혹 만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의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가게 종업원이었지 몸을 파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손님은 나의 눈동자를 부담스럽게 좇았다. 그건 아주 역겨운 일이었다. 나는 열심히 짱구를 굴려 완곡한 거절의 말을 찾았다. 그 때 아줌마가 내게 입을 맞췄다. 손님이 입을 떼었을 때 내 입술에는 커피 쩐내가 남았다. 손님의 눈빛은 아련했다. 나는 속으로 이 오물 덩어리 같은 여자를 때려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내 얼굴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너 그 표정 뭐야?”
손님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마음속으로 표정을 풀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외쳤으나, 참깨 같은 눈과 불어터진 코, 입으로 이루어진 눈 앞의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럴 수 없었다. 손님은 자기 잔을 벽에 집어 던졌다. 테이블을 통째로 엎어버리려다가,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손으로 쓸어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무시한다고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거야?”
한참을 두들겨 맞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지금 뭐 해?”
내 등짝과, 머리를 가린 팔을 타작하던 손님의 손이 멈추었다. 가드 두 명을 대동한 실장님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단골 손님 기다리셔. 나와.”
나는 일어서려 하다가 손님이 억센 팔로 내 옷깃을 잡고 늘어진 탓에 주저 앉고 말았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손님은 더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 끌었다. 나는 목이 졸려 캑캑 거렸다. 실장님이 실랑이를 벌이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또각 또각, 구두굽 밟는 소리가 선명했다. 실장님은 팔을 크게 휘둘렀다. 손바닥과 손님의 뺨이 맞닿는 소리도 구두소리 못지 않게 선명했다.
나는 마침내 아줌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실장님 옆에 섰다. 손님은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의자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씨발년이.”
눈을 부릅 뜨며 자신을 노려보는 아줌마에게 실장님은 뺨싸다구를 한 대 더 날려 주었다.
“안 갈 거야?”
실장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재빨리 그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 날, 맞아서 붉은 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어루만져주던 노노의 손이 얼마나 따스하던지. 철이 형의 되도 않는 헛소리 때문에 생겼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점점 자주 만났다. 몸 좀 팔면 어떻겠는가? 여전히 향기롭고 여전히 값비싸고 여전히 탱탱한 사람인데. 업무적으로 보나 관계적으로 보나 노노와 가까워지는 건 손해볼 것 없는 일이었다.
가게를 그만두고 벌이가 없어진 이후부터는 줄곧 노노가 주는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다. 살고 있는 집도 타고 다니는 차도 모두 노노의 선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폰서를 끼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 물론 진지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즐기는 것이지 상하관계가 있는 사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노는 이불을 포옥 덮고 잠들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정리해두고 속옷은 빨래통에 담아두었다. 침대 옆 선반에 놓여진 노노의 휴대전화를 들어 켜보았다.
‘<머니버켓첼린지> 배당 금액이 정산되었습니다.
게임의 승패가 갈린 것이다. 머니버켓첼린지의 결과는 첼린지 이후 60시간 이후에 나온다. 그 시간 사이에 중태에 빠졌던 사람들이 죽으면 스코어도, 경기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메세지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미소지었다. 메세지는 새벽 세시에 온 것이었다. 잠들기 전 확인한 사망자 수는 10명에서 변화가 없었다.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노노는 정오가 넘었을 때나 일어날 것이다. 그게 본디 버릇이었다.
막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노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일찍 일어났네? 방금 집 도착했어. 자는데 방해하기 싫어서.”
“빨리 우리 집으로 와.”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노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귀찮았지만 노노가 지금껏 해준 선물들과 앞으로 받을 선물들을 떠올리며 시키는 대로 했다. 노노는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캥거루 안 죽는다며.”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노노가 낮게 말했다.
“응?”
“내가 얼마 잃었는 줄 알아? 니가 캥거루 죽을 리가 없다고 했잖아!”
나는 아차 싶었다. 내 결과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제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