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커피를 받아 돌아왔을 때 노노는 자리에 없었다.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벽을 등지고 앉았다. 쨍한 햇빛이 눈을 찔렀다. 나는 의자를 창가에서 조금 떨어뜨렸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천장이 높고, 정남향 벽 전체를 통유리로 끼운 탓에 그늘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필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남중고도를 지나 기울어진 태양이 떠 있었다. 맞은편 자리로 옮겨 앉고 싶었지만 그곳에는 노노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
빈 자리는 많았고, 원한다면 다른 자리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노가 그걸 원할 리는 없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플라스틱 잔을 들었다.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아 마셨다. 우리를 제외하면 카페 4층에는 커플 하나 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창가에 앉아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따가운 햇살을 맞고 있던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기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었다. 여자는, 아마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림 같은 배경이었다. X자 형태로 내려다보이는 사거리로부터 좌우 소실점까지 고층 빌딩이 죽 늘어서 있었다. 창문들이 반짝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그 건물들의 사이사이를 빈틈없이 채워놓았다.
모든 방향의 건널목 앞에 사람들이 너덧명씩 서 있었다. 도로는 한적했고 자동차들은 빠르게 달렸다.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거리의 모든 보행자 신호등이 동시에 녹색불로 바뀌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도로로 발을 내딛였다. 그들은 도로 한 가운데서 교차했다. 어떤 이들은 걸어서, 어떤 이들은 뛰어서 그 복잡한 흐름 속으로 합류했다. 문득 소름끼치는 끼익, 소리가 들렸다. 은회색 suv 한 대가 북동쪽 도로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사거리를 관통했다. 서너 개의 몸뚱아리가 멀찌감치 날아가 신호 대기하던 맞은편 차량들에 내팽개쳐졌다.
“씨발 저거 뭐야.”
사진을 찍던 남자가 놀란 얼굴로 창문에 다가섰다. 여자 역시 몸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둘은 말이 없었다. 여자가 남자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슬쩍 빼앗았다. 그리고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찍었다.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창문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그만 부딛히고 만 것이다. 차에 치인 사람들의 비명과 동행인들의 절규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작게 울렸다. 누군가는 도로를 재빨리 벗어났고, 나머지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은회색 suv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남서쪽 도로에 멈춰서 있었다. Suv바퀴 밑으로 스키드마크가 길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됐어?”
노노가 양 손을 티라노사우르스처럼 들고 테이블 앞에 섰다. 손이 조금 젖은 상태였다.
“브레이크 밟았어.”
“몇 명 정도 죽었을까?”
“한, 서너 명?”
몇몇 사람이 suv차량에 다가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잠겨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꽤 먼 거리인데도 그 분개한 행인들이 어떤 욕을 하는지 입모양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차창을 부술 듯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Suv는 갑자기 후진했다. 망연자실하여 도로에 앉아 있던 행인을 밟아 뭉개고 창을 때리던 시민 하나를 들이받았다.
“이제 여섯 명인가?”
노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볼륨을 넣은 중단발에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역광을 받은 피부는 어느 때보다 뽀얗고 눈은 유달리 깊었다. 누구라도 마주한 순간, 바깥에 피칠갑된 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적어도 몇 초 간은.
노노는 밖을 내다보며 음료를 마셨다. 나는 언젠가 이 여자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캥거루는 피씨방에서 FPS게임을 하고 있었다. ‘블러드버켓첼린지’ 사이트에 남긴 글들을 조합해 봤을 때, 그는 40대 무직자에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중이었다. 과연 그는 누가 봐도 한심한 백수처럼 보였다. 남색 캡을 푹 눌러썼고 입가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담배 쩐내가 나게 생겼지만 의외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그가 하는 게임에 접속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같은 게임을 계속 했다.
여느 챌린저들과 마찬가지로 캥거루는 과묵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나눈 대화는 고작, 건물 안에 두 명 있어요, 구급상자 주워요, 아, 죽었다, 같은 말 밖에 없었다. 우리 둘 다 총을 그리 잘 쏘는 편은 아니었다. 5판 째 진 후 새로 매칭을 돌리는 동안 캥거루가 처음으로 게임과 상관 없는 말을 꺼냈다.
“다음에 챌린저 하고 싶다고요?”
블러드버켓첼린지 이야기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선생님도 블러드버켓챌린지 회원이시잖아요.”
“선생님은 무슨. 나 같은 백수한테.”
캥거루가 피식 웃었다.
“챌린지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세요?”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게임 매칭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괜한 질문을 해서인지 캥거루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그나마 잘 해주던 게임 브리핑도 전혀 하지 않았다. 캥거루는 총을 난사하며 혼자 적들에게 달려들어 죽거나 내가 적들과 마주쳤을 때 나를 죽게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쳤다. 그러니 게임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역시, 인생 망한 낙오자들과 놀아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임은 지루했다. 캥거루를 만나보는 게 노노가 시킨 심부름만 아니었다면 벌써 몇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나는 허공에 대고 총을 난사했다. 캥거루가 내 캐릭터 옆으로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나는 탄창이 빈 총을 내다 버리고 트럭에 올라탔다.
“학생은 어떻게 할래요?”
캥거루는 책상에서 손을 내려놓은 채 물었다.
“뭐가요?”
“아까 챌린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잖아요.”
사실 나는 블러드버켓첼린지 따위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노노에게 챌린저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자살을 할 것 같은지 파악하여 알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챌린저들은 첼린지에 대한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더 쉽게 드러냈다. 때문에 나는 실행하지 않을 거창한 첼린지 플랜을 미리 짜두었다.
“저는 저랑 닮은 인형들을 커다란 풍선에 매달아서 띄울 거에요. 물론 마지막에는 저도 풍선에 매달려서 날아가야죠. 풍선은 높은데 올라가면 터지잖아요? 그럼 인형들도 저도 땅에 떨어지는 거에요. 길 가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들에 맞아 죽고…”
캥거루는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생긴거랑 다르게 완전 미친놈이네.”
뒤편에서 적들이 트럭에 총을 쏘며 다가왔다. 캥거루는 키보드와 마우스에 다시 손을 올렸다.
“봐요, 내가 어떻게 할 건지 보여줄 테니까.”
캥거루는 차를 돌려 총을 쏘는 적들에게 곧장 돌진했다. 적들은 트럭에 치어 멀리 튕겨져 나갔다. 캥거루는 계속 사람들을 치며 온 맵을 돌아다녔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10킬 정도를 달성한 후에 한 벙커에 차를 들이 받았다. 트럭에 불이 붙었다. 우리의 캐릭터는 불타 죽고 게임에서 패배했다.
“난 원래 사람 죽일 생각 없었어요. 그런데 집행자가 와서 그러더라고요. 1인분은 해야 사람 아니냐고. 10킬이면 1인분은 되지 않아요?”
“집행자요?”
캥거루는 내 말을 무시하고 게임을 종료했다.
*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뉴스에서는 온통 캥거루가 일으킨 묻지마 살인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뉴스 채널들은 저마다 ‘전문가’들을 모시고 이번 사건에 대해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근 몇 년 사이 급증한 묻지마 살인들의 연관성에 대해 각자의 의견들을 개진했다. 묻지마 살인은 ‘개인의 고립과 공감 능력 저하에 의해 나타나는 사회 병리 현상’이라는 게 주된 주장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저 사람들은 진짜 모르나? 이거 그냥 다 블러드버켓첼린지잖아.
블러드버켓첼린지는 일종의 자살 사이트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평온한 자살 방법을 공유하거나 동반자살 파트너를 모집하지 않는다.
이 사이트에서는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자살할 수 있다. 그 자격을 가진 사람을 챌린저라고 부른다. 챌린저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한 후 자신도 죽어야 한다. 이를 챌린지라고 부른다. 첼린저는 챌린지를 실행하기 전에 3명의 챌린저를 선발할 수 있다.
이전 챌린저에게 선택 받는 것 외에 첼린저가 되는 방법은 없으므로 회원들은 사이트에 자신들의 불행한 사연을 잘 다듬어 올렸다. 첼린저와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체 왜일까? 노노의 요청으로 사이트에 가입했고, 매번 새로 선발된 첼린저들을 만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캥거루의 사망 소식은 없었다. 뉴스에서는 이번 사거리 차량 돌진 사건의 사상자가 서른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그 중 사망자는 10명이었다. 과연, 캥거루는 정말 1인분을 해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 도대체 왜 마흔이 되도록 취직도 못하고 부모님 집에 빌붙어 살았던 걸까?
시간 날 때 캥거루에게 면회라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노노에게 캥거루가 10명을 죽일 거라고 말해 두었다. 첼린저가 몇 명을 죽일지 그 숫자를 근사치로 맞추면 노노는 내게 후한 팁을 주었다. 나는 이번에 받을 돈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다 캥거루 덕분이다. 행동하는 첼린저를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운 첼린저 발표는 매달 1일에 있었고, 선발된 사람은 세 달 안에 첼린지를 실행하는 것이 블러드버켓첼린지의 규칙이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선발자는 관심이 고픈 찌질이 들로, 실제로 첼린지를 실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첼린저를 만나는 나의 수고는 대부분 쓸모 없는 일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집행자란 건 뭘까? 지금까지 많은 챌린저들을 만나봤지만 그런 걸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이트 소개글에서도, 내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칭이었다.
나는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데스크에서 사건 당시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사고를 낸 suv의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차에 치여 날아가는 사람들이 1인칭 시점으로 보여진다. 내장이 튀어나오고 피가 사방에 튄다. 화면 전체에 모자이크가 씌워져 있지만, 자극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기자가 격양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다. 내가 볼 때, 방송사들은 이 사건을 즐기고 있다.
나는 남은 맥주를 단숨이 들이켰다. 달았다. 캥거루 본인이 죽지만 않는다면 만사형통이다.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부르르 떨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노노가 상기된 목소리로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 이번에 얼마 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