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이글 Sep 21. 2022

험담과 소문이 많은 연구원

가십이 만연할수록 업무가 여유롭다는 뜻

이전 직장이었던 연구원에서는 '말'이 많았다. 누가 외제차를 중고로 샀다더라, 누가 부모 건물을 관리하느라 바쁘다더라, 누가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더라 등등 서로서로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곳이었다. 묵묵히 일만 하는 나로서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사실 처음에 입사했을 때에는 이런 분위기인 줄도 몰랐다. 그때는 멋도 모르고 앞만 보며 박사가 보내는 업무를 처리하기에 바빴으니까 다른 연구원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무슨 가십을 떠들고 다니는지 교류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관에서 일한 지 5년 차쯤 되었을 때 비로소 여기에는 질투와 시기심이 만발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서로 보이지 않는 암투와 필사적인 깎아내림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 내가 한 말이 무색하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연구원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일만 해서 너무 좋아요."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 데에는 대학원도 '말'이 많은 동네였기에 상대적으로 연구원은 덜하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판일 뿐이었다.)


이전 연구기관의 일부 사람들의 하루 행태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근무시간을 유연근무제를 신청해서 오전 7시 출근 4시 퇴근 혹은 8시 출근 5시 출근으로 신청해 놓는다. 관리자급은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없도록 원장이 제약을 주었기 때문에 관리자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유연근무제를 사용해서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관리자급인 부서장이 출근하기 전까지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신나게 연구원 사람들에 대한 가십을 나눈다. 7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그걸 두 시간이나 한다. 8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그걸 시간 한다.


9시쯤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자리에 와서 일을 하는 '척'을 한다. 오전 시간은 업무를 대충 하면서 사내 메신저로 잡담을 한다. 흡연자들은 이 시간에도 담배 타임을 가지러 밖에 함께 나가서 험담을 한다.


점심시간은 11시 30분부터이다.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식사하면서도 남 얘기를 하는데 열을 올리고, 식사 후 티타임을 가지면서도 연구원의 동료를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말을 교묘하게 나눈다. 대화에 열을 올려 도가 지나치면 오후 1시 30분쯤에 사무실에 복귀하기도 한다.

 

그런 다음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후 업무를 곁다리로 하고 4시나 5시인 본인의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오후 시간에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건물 비상계단에서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지며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퇴근을 해서도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기의 '부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서 연구원 내 돌아가는 상황을 묻거나 다른 사람의 험담을 이어서 한다.


이런 직장일수록 험담과 소문이 무성하고, 가십이 만연하게 된다. 이게 다 업무에 신경을 덜 쓰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이다. 아니,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얼마나 일이 많은지, 그 업무의 과중함이 얼마나 본인을 짓누르는지, 과장해서 생색을 내고 다닌다. 근데 생색도 내본 사람이 내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이렇게 생색내는 사람들이 성과평가에서 묵묵히 불평 없이 일하는 사람에 비해 평가를 더 잘 받는다. 말 부조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부조리한 이유는 평가자들도 피평가자들과 다를 바 없이 이현령비현령하며 가십과 소문에 휘둘리는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전 연구원을 이직하기로 결심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십과 헛소문, 뒷 이야기가 만연해 있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았다는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가십을 떠벌리고 다니는 경향이 보였는데 예전 직장은 바로 '공공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뭇사람들에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에서 과감히 뛰쳐나가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러한 가십들이 기정사실화 되는 조직 분위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연구원에서의 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