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의 MZ세대들(2)
정시 퇴근은 목숨같이 지킨다
연구원에는 유연근무제도가 도입된 지 한참 되었다. 유연근무제도도 뜯어보면 여러 형태가 있는데, 우리 연구원의 유연근무제도는 주 40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여 주 단위로 40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하루에 8시간 근무에 한 달 근로일을 곱한 숫자를 총 한 달 근무시간으로 산정하여 그 시간만 채우도록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배분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근무일이 20일 있으면 여기에 8을 곱한 160시간을 20일 동안 채우도록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단, 핵심 근무시간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필수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일과 여가의 양립을 중시하는 MZ세대 연구원들은 이 유연근무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9시 이전 출근해서 6시 이전에 퇴근하는 시간대로 유연근무시간대를 설정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8시 30분 출근, 5시 30분 퇴근 혹은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7시 출근, 4시 퇴근도 있다!
유연근무를 신청할 때는 '사유'를 신청해야 한다. 사유는 거의 대부분 유사하다.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멀어' 혹은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을 피하고자'로 시작되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라는 말도 종종 보이는 문구이다.
모든 MZ세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들은 본인이 설정한 근무시간에서 1분이 아니라 1초라도 넘지 않게 칼퇴근하는 습성을 보인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연구원이 나에게 결재받을 기안을 올렸는데 결재라인을 잘못 올렸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제규정 파일을 주고 모든 기안의 결재라인이 적혀 있는 위임전결규정도 별도의 파일로 보내주면서 참고하라고 일러둔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퇴근시간을 앞두고 올린 기안이 잘못되어 있길래, 결재라인을 수정하라고 업무 메신저 채팅 기능을 이용해서 알려주었다. 그때가 이 사람이 설정한 유연근무 퇴근시간에서 9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채팅창에서는 1이 없어지지 않았다. 이미 퇴근한 것이다. 본인이 결재받을 기안을 올리기만 하고 결재라인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거나 확인받지도 않고 본인이 할 일은 다했다는 식으로 본인 퇴근 시간이 되니 가버린 것이다.
물론 퇴근 시간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나도 M세대에 포함되는 나이대이기도 해서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본인의 복지를 위해서 결재받아야 하는 기안을 올렸으면 퇴근 시간을 목숨처럼 사수하려는 것보다는 제대로 결재라인을 확인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이 사람이 제대로 결재라인을 파악해서 기안을 올렸다면 정시 퇴근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내가 알 필요도 없고 몰랐을 것이다.
그 다음날 이 연구원을 비롯한 몇 명의 연구원에게 규정집과 위임전결규정 파일을 보내면서 앞으로는 결재받는 데 있어서 이 파일들을 숙지하고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알려주었다. 결재라인을 잘못 올리고 퇴근해 버린 연구원이 앞으로는 결재라인 잘못 올리는 실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연구원은 거기에도 '죄송하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박사님 꼼꼼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게 이 연구원의 답변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기가 실수를 해도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MZ세대 특성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