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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글 Sep 18. 2022

서로 같은 자리에 있어도 대화 안 하는 사람들

부서장들이 회의에서 보이는 행태

연구기관은 한 분야에 대해 오래 파고들어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물론 다방면의 연구를 두루 경험한 사람도 있지만, 박사학위라는 것 자체가 특정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를 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문에 더욱 그러하다. 거기다가 특정 분야 연구기관에서의 경력이 10년 이상 되면 다른 연구기관으로 이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낮아진다. 특히 해당 분야가 경제나 산업과 같이 범용성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더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기관에서는 석사급 연구원의 이직률이 낮지는 않지만, 박사급 연구원의 이직률은 그리 높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자기 살 길을 찾아 논문 실적과 인맥 형성을 통해 그간 연구기관에서 쌓은 전문성을 토대로 대학교의 교수로 이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근데 이런 경우는 2010년대 초반에나 간간이 보였고 요즘에는 연구기관에서 오래 재직한 경력을 토대로 교수로 가는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기관에 짧게 근무한 다음에 바로 교수가 되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우리 분야의 경우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연구기관에서는 박사급 연구원들이 오랫동안 재직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문에 '고인 물'이 꽤 많다. 그리고 웬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해임당하는 일이 없는 것도 연구기관의 특성인지라, 이들 '고인 물'들은 별로 거리낄 것이 없이 행동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고인 물'의 특성상 오랜 기간 동안 한 기관에 재직했기 때문에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아니, 자기 파벌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전 기관에서는 두 부서장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다. 둘 다 부서장이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부서장급 회의에서 만나야 하는데, 서로 발언을 하게 되면 아예 딴 곳을 쳐다보고 있거나 상대가 발언하는 것을 안 들리는 양 거의 쌩무시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라. 부서장급 회의에서도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할 정도이면, 평소에 그 부서장들은 업무에 있어서 협조를 하겠는가? 전혀 안 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배짱으로 안 하는 것이다.  


이 둘이 굉장히 사이가 나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서 석사급 연구원들도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사이가 나쁘냐고?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해서이다. 서로에 대해 능력에 비해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부당하다고 생각해서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속이 좁고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연구기관에서는 '부서장' 직함을 달고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다.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부서장이 이러한데, 그 아래에 일하는 박사급 및 석사급 연구원이라고 안 그러라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박사급인지, 석사급인지를 불문하고, 연구기관에 오래 재직한 '고인 물' 인력들은 자기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물론 근속연수가 길면서도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적당히 지내면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자기만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의 비율이 연구기관에서는 사기업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그 부서장 둘은 서로가 부서장급 능력이 안 되는데 부서장 역할을 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 연구원에게는 그쪽 편이라고 인식하고 편 가르기를 하여 똑같이 쌩무시라는 대우를 해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게 처신하는 방법은 그 둘 중 어느 누구와도 가깝지 않게 지내는 것이다. 부서장급 중 어느 누구라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간의 역학관계는 그 누구도 미리 귀띔해주지 않는다. 본인의 센스와 눈치로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기관에서도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누가 실세인지, 누구와 가까워지면 안 되는지, 누가 누구와 앙숙인지, 등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기업에서도 부서장급이 이렇게 공식 회의 석상에서도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할지는 의문이다. 서로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서 본인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 바로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연구기관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는 부서장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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