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그림 공부

룩 백(Look Back) - 후지모토 타츠키

by EVAN

최근 팀원분이 룩 백(Look Back)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원래 약간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남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는 짧은 숏츠조차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설레는 마음이 들어 퇴근하자마자 작은 술상까지 차려놓고 영화를 음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인상 깊었다. 영화가 좋아서였는지, 술을 마셔서 감정이 올라온 건지 모르겠지만,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었던 마음.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최선을 다했던 순간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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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로 유명한 주인공은 어느 날 라이벌을 만나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없이 1년 동안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절대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라이벌과 관계를 쌓으며 함께 성장하고 나아가고, 동시에 자아를 형성하며 각자의 미래를 그려나간다. 자칫하면 익숙한 클리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이를 풀어내는 작화, 연출, 스토리가 모두 탁월한 작품이었다.


디자인을 비롯해 모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다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문득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릴 때 미술 시간에 신발을 그렸는데 선생님과 친구들 칭찬해 주셔서 매우 뿌듯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후 내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그런데 신기한 건, 요즘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나를 포함해 “직종을 잘못 골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속상한 기분이 든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각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도 적지 않았을 텐데.


대학생 때 나는 발표가 있거나 과제가 많은 강의를 주로 1교시에 들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기피하는 시간이었지만, 전날 밤을 새우고 수업 직전까지 퀄리티와 아이디어를 다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마치면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학점이 잘 나올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잘하고, 나아지고 싶었을 뿐이다. 나도 그렇게 뜨거웠던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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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쩌면 배가 불러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타 업계나 직종의 금전적 보상이나 업무 환경을 미디어나 정보 등을 통해 쉽게 알 수 있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룩 백(Look Back)을 보고 난 후, 열정이라고 말하기는 뭔가 오글거리지만, 비슷한 무언가가 다시 불붙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뜬금없지만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 들어 내 약점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강해져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인체 구조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또 순수하게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크게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먼 미래에는 큰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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