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 감정을 처리하자

by 권서희

찌꺼기 감정을 처리하자


요즘 내 삶의 질을 높이는 1등 공신 로봇청소기는 사람도 아닌 것이 나를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해 준다. 그러나, 로봇청소기도 나에게 일을 시킬 때가 있는데 바로 ‘오물통 비움’이다. 이 오물통을 그때그때 비워주지 않으면 로봇청소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물통에 물을 버리면 바닥에 꼭 찌꺼기가 남아 있다. 가끔 청소를 해도 꿉꿉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오물통에 찌꺼기가 쌓이면 아무리 오물통을 비우고 청소를 해도 방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로봇청소기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종종 ‘찌꺼기 감정’이라는 것이 남아 오래 방치되면 꿉꿉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일이 지나가고 나서도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서서히 돌아오곤 한다.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은 날은 퇴근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속상한 기분이 계속되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과 다투게 되면 며칠간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AI나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찌꺼기 감정’이 남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노트북의 전원을 끄듯이 ‘상황 종료’ 버튼을 누르면 우리의 감정도 바로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 해서 우리는 구질구질하게 미련이 남기도 하고, 쪼잔하게 계속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곱씹고 또다시 상처받기도 한다.


sauna-1093235_1280.jpg 이미지 : 픽사베이

헤어진 연인에게 “자니?”라는 메시지를 보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머리로는 받아 들이지만 마음으로 받아 들이지 못 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내가 사내강사로 직장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다. 같은 일로 3번 이상 상사에게 불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왜 또 저러실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고 상사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이미 그 상황은 다 해결이 되었고 지나간 일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에겐 그 일이 종료된 일이었지만 그 상사에게는 계속되는 찌꺼기 감정이 맴돌며 매일매일 새롭게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일이 해결되었지만 감정의 문제가 남아 있던 것이었다.


우리는 쿨하지 못 하고 구질구질한 감정의 늪에서 오랜 시간 허우적 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쿨하게 멋지게 툴툴 털고 게임의 다음 단계 넘어가듯이 레벨업 해서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하다. 쪼잔하고 구질구질하고 이제와서 또 생각하니 구차하기까지 한 우리의 찌꺼기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그럴 수 있다.


물론, 이런 찌꺼기 감정의 나의 상사처럼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끄집어 내는 방법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감정의 표출과 해소는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할 수 있다. 나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우선 ‘내가 지금 지나간 그 일에 찌꺼기 감정이 남아 있구나. 그럴 수 있지. 찌꺼기를 한 번 조용히 끄집어 내서 정리해보자.’ 하고 스스로 인지해줘야 한다.


인지의 재설계를 해 보는 것도 좋다. 상상 속에서 그 상황에 다시 돌아가서 지나치게 나쁘게 받아들였던 감정이 있다면 바로 잡아서 인지를 바꾸는 방법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날 공격하려던 건 아니었구나. 내가 그렇게 까지 잘못한 건 아니었구나. 상황이 최악까지는 아니었구나.’라고 인지를 재설계 해보는 방법도 괜찮다. 이 방법이 어려우면 다른 방법도 좋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만의 찌꺼기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찾아보아도 좋다.


직접적인 감정의 원인을 분석해서 인지를 바꾸는 대신, 표현하기 어렵고 애매한 정도의 찌꺼기 감정이 남아 있을 때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황은 지나갔지만 아직 내 기분이 좋지 않으니, 내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것을 해 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좋고, 산책을 해도 좋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좋다. 로봇 청소기 오물통의 찌꺼기를 오래 방치하면 더 이상 제대로 청소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감정의 찌꺼기도 오래 방치되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찌꺼기 감정을 오래 묵히지 말고 그때그때 가볍게 비워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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