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에 대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20여년 전쯤 대학 시절,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잊혀 지지 않는 문장이다. 대학시절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당시 언론인을 꿈꾸던 나는 인턴기자로 매일 취재 현장을 찾아가고 기사를 써 업로드하면서도 대학 생활을 병행했었다.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쌓기도 소홀하지 않았다. 자격증과 토익시험 공부를 하면서도 전공 공부에 소홀하지 않았고 올A학점으로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대인관계도 잘 하고 싶었고 동아리와 학회 활동도 꾸준히 열심히 했다. “지독하다. 지독해.” 친구들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노는 것까지도 최선을 다 해 밤새 놀았다. 나는 다 잘 해내고 싶었고 완벽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싶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번 뿐인 대학시절이니까 말이다.
이런 완벽함을 쫓던 나를 대충 살기로 마음먹게 한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등교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려는 그 순간 가슴이 꽉 막히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세수라는 커다란 산에 감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수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완벽함을 추구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우스운 생각이지만, 당시엔 세수 하나도 허투로 하고 싶지 않았다. ‘효과적으로 세수하는 방법’을 검색해서 따라하곤 했다. 피부결대로 손가락의 방향을 맞추고 세안제는 PH7에 맞는 제품으로 골라서 손톱만큼 손바닥에 덜고, 물의 온도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온도로 했어야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내가 잘 해 보려고 하는 모든 노력들이 지긋지긋해졌다. 잘 하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수는 내게 완벽하게 잘 해내야만 하는 엄청난 과제이고 큰 산이어서 감히 시작할 수 없었고 눈물이 났다. 무슨 세수를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세수 사건을 통해 나는 머리 한 대 쿵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부터 였다. ‘무엇이든 대충 하자. 잘 하려고 하지 말자.’ 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시작하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완벽한 최선의 방법을 위해 애쓰느라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이다. 시작했다가 완벽하게 못 할 바에 아예 시작을 말자는 생각에 지배당하기도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삶에 열정적인 사람이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완벽주의자이면서도 시작을 곧 잘 하는 편이었는데, 대신에 나를 온전히 갈아 넣어 재가 될 때까지 소진하는 유형이었다. 그러다 번아웃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다. 완벽주의를 버리면 조금만 내려놓으면 삶의 난이도가 뚝 떨어진다. 조금 더 힘 빼고, 조금 더 가볍게 삶을 대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괜찮다. 우리 좀 더 가볍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