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남에게 허락받지 말자

by 권서희

내 감정을 남에게 허락받지 말자


“여러분, 저 지금 화내도 돼요? 이 감정이 정상인가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온갖 고민 상담 글을 가장한 자신의 감정을 허락받는 글이 하루에도 수천편씩 올라온다. 심지어 요즘에는 챗GPT에게도 허락도 구한다. “GPT야,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화를 내도 괜찮아?” 누군가에게 허락받은 감정은 정상이고, 공감받지 못 한 감정은 비정상일까? 사실 이미 그런 고민 글을 쓰는 순간에 이미 감정은 다 느껴버리고 있다. 허락받지 않는다고 쑥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누군가에게 내 감정이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동의를 구해야 마음이 편할까?


감정이라는 것은 내 의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저절로 뇌의 작용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다.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스스로 감정 스위치를 마음대로 휙휙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마치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우리는 착각하며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심리 상담의 수단으로 챗GPT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데이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읽어주기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응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hands-423794_1280.jpg 이미지 : 픽사베이


소수의 의견, 남들과 다른 특이한 행동을 억제하고 남들 사는 대로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그 이유 중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10대에는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책상에 앉아서 모두의 인생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든 모두 대입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직업은 전문직이나 대기업이 정상이고, 결혼은 너무 늦지 않게 30대 후반에는 해야 하고, 자녀는 하나 둘은 필요하다. 중형차 이상의 자가용과 수도권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필요하다. 유난히 사회가 정해준 삶의 틀이 견고한 것이 한국사회이다.


이 정해진 길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개인에게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손가락질을 마음껏 해도 괜찮다고 허용한다. 이러한 집단주의 속에서 개인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억눌리고 검열이 필요해진다. ‘남들도 다 힘든거야? 나만 나약한건가? 내가 못나서 남들은 괜찮은데 나만 힘든건가? 내가 이래도 되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사회로부터의 허락을 구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고 다양하다. 그리고 심지어 사람마다 상황은 다르다. 정확하게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입사 후 조직사회화 과정 과정을 겪는 신입사원들은 적응의 과정에서 누구나 고충을 느낀다. 그런데 신입사원들 중 누군가는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가족들의 응원을 충분히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좋은 선배를 만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 한 사람도 있다. ‘회사에 적응하는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속에서 모두 똑같은 상황이라고 이름표를 붙이지만 사실 완벽하게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은 없다. 개인마다 사정과 상황은 다 다르다. 그리고 그 사정과 상황과 어우러져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사람마다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러니 인터넷 커뮤니티에 “저 신입사원인데, 회사에서 상사가 저에게 OOO이라고 하는데, 제가 화가 나는게 정상인가요?” 라는 말도 안되는 글을 올리지 말자.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 상황에 어울리는 정상 감정이라는 것은 없다. 이제 그만 감정에 대한 허락과 검열을 멈추자.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난 것이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 괜찮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내 감정을 그저 느끼는 대로 고요히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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