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필요한 마음 온도조절

by 권서희

관계에 필요한 마음 온도조절


얼마 전 아들과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가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10분 남짓을 걸어가는데 인사를 1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나는 매일 강의장에 있느라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아들은 한 걸음 걸을때마다 주변에서 한 번씩 누군가가 “oo야~ oo형!” 하고 이름을 불렀고 인사를 나눴다. 살가운 성격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친구가 많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시절과 묘하게 겹쳐졌다.


나는 어린 시절, 대인관계 측면에서 욕심쟁이었다. 보통 학급 안에서 여러 무리가 형성되고, 아이들은 하나의 무리에 속해 친구들을 사귄다. 그런데 나는 모범생 친구들 무리에도 속해 있었고 소위말해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 무리에도 속해있었고, 시끄러운 친구들 무리에도, 조용한 친구들 무리에도 모두 속해 있었다. 다른 학급에도 친구들이 있어서, 쉬는 시간마다 각각 다른 학급에 가서 놀다 오는 아이가 나였다. 대학시절에도 법학회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활동도 했고, 학생기자를 하면서 인턴 생활도 병행했다. 각 그룹에서 모두 아는 사람들이 생겼고,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과 트러블없이 잘 지냈다. 소위말해, 평판이 좋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다르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에서 나이가 들수록, 좁고 깊은 인간관계로 재편성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모두와 잘 지내려 애쓰기보다, 소수의 소중한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한다.


그 시절, 모두와 트러블 없이 잘 지내기 위해서 나는 상당한 애를 썼고 그것이 꽤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정작 내 자신과는 잘 지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마 어린시절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앓았던 것 같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는 타인으로부터 착한아이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을 억압하는 심리적 증후군을 말한다. 어린 시절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헛된 환상 속에서 살았었다.


pool-thermometer-1605907_1280.jpg 이미지:픽사베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마음의 평화를 쟁취할 수 있다. 내 욕구를 눌러서 잘 보이려고 애쓰는 노력이 반복되다보면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언젠가 지치게 된다. 그리고 그 상대방이 왠지 미워지고 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지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나빠진다. 나를 활활 태워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해주다보면 잠깐은 상대방과의 관계가 따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나 자신은 다 타버려 재가 된다. 스스로를 재가 될 때까지 태우면서까지 누군가를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마음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어딘가에서 소진되면 분명히 다른 곳에서 사용할 마음 에너지가 고갈되게 된다. 예를들어,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툭 치고 갔는데도 괜찮다고 웃어주며 오히려 그 사람이 먼저 갈 수 있게 친절하게 길을 내주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내 마음 속에는 불쾌한 감정이 쌓였고 매사에 이런 식이라면, 정말 마음 에너지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쓸 에너지가 고갈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감정조절이 어려워진다.


예를들어, 자녀를 훈육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마음 에너지가 필요하다. 훈육을 하는 상황에서 내 감정을 조절을 하지 못 하게 되면 사고가 터진다. 아이에게 괜한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게 되고 뒤돌아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꼭 필요한 상황에서 마음 에너지를 꺼내 쓰려면 평소에 한정된 마음 에너지를 적당히 세이브 해 둬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 받지 않아도 괜찮다. 질문 받았다고 해서 다 대답할 필요없다. 사과 받았다고 해서 다 용서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친절과 배려면 충분하다. 나를 소진하면서까지의 과한 친절,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하는 과한 배려, 내 마음을 억누르면서 억지로 하는 용서는 그만 두자. 누군가가 나의 선을 넘었을때 무조건 괜찮다고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선을 넘으셨으니, 조심해 주세요. 제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내 마음속의 욕구에 먼저 응답해도 좋다. 그리고 관계에는 적당한 온도 조절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모든 관계에서 팔팔 끓는 100도를 유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관계에서의 적당한 온도조절이 나의 마음의 평화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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