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최근에 유튜브를 보다가이라는 채널의 재밌는 영상을 발견했다. 3명의 친구가 우연히 지인이 겹쳤는데, 3명이 알고 있는 그 지인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본캐와 부캐의 성격 차이가 극과 극인 경우의 인물이었다. 직장 동료는 그 지인을 매사에 조용조용한 대문자 I(내향형)로 알고 있었다. 반면에 동호회에서 그 지인을 만난 사람은 동호회에서 모임을 주도하는 대문자 E(외향형)로 그의 캐릭터를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동네 친구가 아는 그는 완전한 개구쟁이에 어딘가 좀 모자라는 캐릭터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이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도 다양한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직장에서의 모습, 가족들과의 모습,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은 다르다. 가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린다. MBTI 검사를 아무리 해도 계속 E가 나오는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나의 경우 ‘낯 가리는 E’ 유형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그 사람이 불편한 사람들이면 안된다. 내가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에너지를 얻지만, 낯선 사람들과 있을 때는 에너지가 소진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꽤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고 다양한 유형이 존재할 수 있다.
예전에는 B형 남자, A형 여자라는 프레임으로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나이 다음으로 묻는 것이 바로 MBTI이다. 그 외에도 DISC, 에니어그램, TCI 등등.. 수많은 성격유형 진단이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나의 성격을 알고 싶어 하고 특정 프레임 안에 분류하고 싶어 할까? 공동체 속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고, 사회가 정해준 적당한 나이에 취업하고 정해진 틀의 인생을 걷는 것이 미덕인 대한민국의 문화 속에서 정체성에 대한 탐색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는 누 군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왜 다를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프레임 안에 지나치게 갇히게 되면 스스로 검열을 시작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어? 나는 E인데 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데 긴장이 되지?’ ‘나는 I이니까 혼자 있는 시간만 필요해. 친구는 귀찮은 존재야.’라는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친구들 앞에서는 외향형인데, 왜 출근만 하면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고 극 내향형이 되는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난 분명 외향형인데 왜 내향형처럼 행동했지? 내가 가식적인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자기 검열로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되는 일로 자신을 또 괴롭히는 경우가 생긴다.
누구나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사회적 내 모습,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의 내 모습, 친구들이나 모임에서의 내 모습은 다를 수 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쓰는 것이 고도로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의 경우이다. 자녀가 집에서 행동하듯 학교에서 행동하면 훈육을 해서 가르쳐야 한다.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상황에 어울리는 적당한 가면을 여러 개 가지고 그때그때 맞춰서 쓰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그때그때 달라지는 내 모습과 성격을 스스로 검열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이해해 주자. 그럴 수 있다. 친구들 앞에서는 활발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이지만, 회사에서는 말도 없고 혼자 점심 먹는 내향형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는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집에 와서 가족들 앞에서 무뚝뚝한 사람일 도 있다. 이것은 가식적인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극도로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며 사회적 가면을 장착하고, 문을 닫으며 그 가면을 잠시 벗어두며 살아가게 된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 우리는 그저 현관문 앞에 가면 거치대를 두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