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음을 치료해주지 않는다

by 권서희

시간은 마음을 치료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다.’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아무리 힘든 일도 속상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몸에 난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고 회복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우리는 먹고 사는데 바빠서 내 마음의 상처를 돌볼 여유를 갖기 쉽지 않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제일 뒷 순서로 미루는 것이 ‘나 자신’인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의 상처따위는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굳건히 믿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지만 아픈 건 여전하다. 모두 잊고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일 만큼 흐릿해진다. 그러나, 이따금씩 예상치 못 한 상황에서 오래 깊이 묻어 두었던 아팠던 마음이 툭툭 튀어나와 스스로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 오면, 이미 너무 오래 방치했기 때문에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겪는지 알아채기도 어려워진다.


묵은 감정은 더 처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마치 책상에 흘린 우유를 닦지 않은 채, 그 위에 책도 올리고 노트북도 올리고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쏟았던 우유는 잊혀진다. 한참 뒤,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가 스멀스멀 방 안을 가득 채워도 그것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고, 찾더라도 이미 굳어진 우유를 처음보다 닦기 훨씬 어려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pocket-watch-3156771_1280.jpg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내가 한 기업의 승진자 교육에 강의를 갔을때의 일이다. 유난히 교육에 부정적이고 표정이 좋지 않은 교육생이 있었다. 하루 종일 계속되는 과정이었기에, 종일 그 분에게 마음이 쓰였다. 쉬는 시간에 슬쩍 다가가 말을 붙여보기도 하고, 조별 활동 시간에 그 분 곁을 지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점심 시간, 뜻밖에 그 분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번 승진에서 동기들은 모두 승진을 했는데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오해를 사서 승진에서 밀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야 승진을 하긴 했지만, 그때 그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고 한다. “이제야 승진하면 뭐해요. 너무 늦어서 이번 승진은 하나도 기쁘지도 않아요.”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했는데, 그 때의 그 일 이후로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났고, 결과적으로 승진을 했으니 문제의 해결 아닌가? 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일단 생채기가 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어 상황이 좋게 변해도 앞으로 가지 못 하고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게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하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넷플릭스도 보고 맥주도 한 잔 하고, 가족들과 웃으며 식사도 하며 잘 살아간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난 생채기는 이따끔씩 튀어올라 더 잘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의지를 꺾게 만들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주저하고 위축되게 된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의 발목에 쇠사슬을 걸고, 더 웃을 수 있는 사람을 회의주의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을 시간을 내서 치료해주자.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 자신의 성취나 성과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다. 우선순위에 밀려서 덮어두고 넘어가는 일을 더이상 반복하지 말고 한 번씩 내 마음을 돌아보자.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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