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먹어지지 않는다

by 권서희

마음은 먹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이 “마음 단단하게 먹고, 정신 똑바로 채리고 살아야 된다.” 였다. 일년에 한 두번 보는 할머니가 해주는 그 말은 당시, 국민학생인 내가 이해하기 참 어려운 말이었다. 도대체 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까? 그냥 하고 싶은 일 하고, 마음이 시키는 행동을 하고, 그냥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걸까? 그리고 마음은 먹는다고 먹어지지도 않는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손주에게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의 입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1920년대생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인생의 대부분에 위기가 함께했고, 극도의 공포와 긴장이 일상인 시절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항상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당히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비단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의 DNA에는 아픈 역사와 함께 새겨진 편치 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마음을 치유받는다거나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요. 마음 편히 가지셔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한번도 듣지 못 한 채 오랜 시간 굳어진 채 살아온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 아랫세대로 이러한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내려가게 되었다.


ai-generated-9212962_1280.png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와 마찬가지였다. 늘 심각하고 긴장되고 구겨진 얼굴로 “항상 조심해야 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똑바로 해야 되고, 너가 잘 해야 된다. 다 너 하기에 달려있다.”는 가치관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슨 일이든 내가 잘 해야 되는구나.’ 라는 가치관이 새겨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상황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를 경험하면 그것은 모두 내 탓이라는 의미다. ‘다 내 잘못이구나...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은 탓이구나.’ 라는 생각은 살아오는 내내 내 마음의 무겁게 짓누르는 바위가 되었다.살다보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나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은 잘못이구나.’ 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죄책감을 키우며 스스로를 공격했다.


“마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에너지가 가득해 보이는 이 말을 나는 참 싫어한다. 그 ‘뭐든’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지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는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리고 마음은 먹으려고 노력해도 먹어지는 영역이 아니다.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된다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왜 있을까? 오히려 여기에서 조금 벗어나야 우리는 숨통이 트이고 좋은 마음도 불러올 수 있다.


마음 단단하게 먹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음 풀어져도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두둥실 떠내려가는 구름같이 살아도 괜찮다. ‘감정 선택’ 이란 주변 사람이나 주변 상황에 내 감정을 다 맡겨버리고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내 마음을 마치 기계 조작하듯이 모든 순가에 긍정 감정 버튼을 누르도록 마냥 애쓰라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 단단히 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태까지 버텨온 그 하루하루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잘 해 왔어요. 다만, 내 마음은 내꺼이니 외부의 무언가가 휘두를 수 있도록 내 마음의 키를 다 맡기지 말고, 이제부터 스스로 잘 돌봐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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