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에 흐르는 눈물
세수를 하다 말고,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얼른 물로 닦아내며, ‘이건 눈물이 아니라 그냥 물일 뿐’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하지만 자꾸만 차오르는 감정에, 세면대 물만 하염없이 흐른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신 후, 남편은 어머니 곁에서 간병을 맡았고
나는 직장과 육아, 집안일까지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이 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존재 같았다.
말 한마디, 한숨 하나에도 온 집안의 공기가 바뀌던 분이셨는데
지금은 어머니 방이 텅 비고, 그 자리에 차가운 공기만 흐른다.
사실, 조용하고 텅 빈 집에서
모처럼 연차를 쓰고 나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런 날이 오면,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푹 쉬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막상 텅 빈 공간이 자유로 채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은 자꾸만 매어 오고, 눈물은 불쑥불쑥 터져 나온다.
이 정체 모를 감정의 강물을 따라,
오늘은 잠시,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침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한때는 이 집안의 중심이셨던 분이, 지금은 조용히 누워 계신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저릿해진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니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다.
그 넓은 가슴이 흐느낌에 따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들썩인다.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며칠 전보다 얼굴빛이 훨씬 맑아지셨어요.”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우울감에 갇힌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꺼낸 말이었다.
마치 정말인 것처럼, 진심인 것처럼—
어머니를 붙잡고 싶었다.
어머니는 혹독한 기후와 산골짜기의 함경북도에서 태어나셨다.
겨울이면 눈이 수개월씩 쌓여 있었고, 바람은 살을 에며 지나갔다.
그 거칠고 매서운 자연 속에서 자란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야무지고 욕심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내셨다.
그 옛날, 사교육이라 불릴 만한 한국무용과 리듬체조를 배우셨고,
결국 사범대학에 진학해 교편을 잡으셨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는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를 대신해 사업까지 도맡아 하셨다.
치마를 두르셨지만, 속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똑 부러진 분이었다.
사내 못지않은 수완으로 일을 처리하시며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셨다.
그런 어머니와 나는 벌써 20년을 함께 살고 있다.
홀시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사실이 주변에겐 늘 대단하게 보였지만
정작 나는 매일 그 하루하루를 선택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처음에는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이상일뿐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매 순간, 어떤 며느리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내 모습을 바꿔갔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도 함께 흔들리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너무 잘하려고 애쓸수록,
내가 기대한 반응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서 마음이 서운해진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너무 잘하려 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일관된 태도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를 지치지 않게 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20년의 시간 동안,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옛날 함경북도의 산골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린 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깊은숨을 내쉰 어느 날,
예전처럼 기운 넘치고 사리 분별이 또렷했던 그 어머니로
다시 돌아오시길, 마음 깊이 바라고 있다.
나는 안다.
세월은 되돌릴 수 없고, 어떤 바람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나는 바라게 된다.
어머니가 다시 눈을 뜨고, 내 이름을 또렷하게 불러주는 그 순간을.
내 손을 잡고, 아주 작은 힘으로라도
“이제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