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시 기행 02
과거 나의 여행은 최저가 또는 가성비로 점철된 배낭여행으로 대표 할 수 있다. 아무리 2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유럽을 숙박비 포함 하루 17유로 예산에 맞춰 다녔고, 그 외에는 주로 적은 돈으로 길게 다닐 수 있는 값싼 여행지들을 주로 갔기 때문이다. 비행편도 애초에 직항 따위는 검색도 하지 않았다.
이런 습관은 직장인이 된 후에도 그리고 배우자를 만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꼭 필요하거나 더러 사치를 부리고 싶은 곳에는 쓰기도 했다. 가령 스리랑카에는 직항으로 가는 국적기 비즈니스 티켓을 끊어 다녀왔다. 하지만 가서는 한국돈으로 몇만 원 남짓한 숙소에 묵었고, 휘황찬란한 고급 식당보다는 저렴한 현지 음식을 찾는데 집중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나마 에어컨 있는 버스 타니 시원하고 쾌적하지 않냐며. 참고로 노멀 버스가 3천 원이면 AC버스는 4천 원으로 고작 1천 원 차이였다.
내가 돈을 버는 상황에서도 그랬던 건.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신념보다는, 해외여행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혹시라도 현금이 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20년 전 마인드가 아직 남아있는 중년 여행자라서 더더욱 말이다. 따라서 캐리어 가득 싣고 기사님 딸린 차 타고 입장해야 할 것 같은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에는 가보지 못했다. 무릇 여행은 '탐험'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파릇했던 20대 땐 '패키지여행은 나이 들어서 가는 거야.'라고 했는데, 어느새 내가 이만큼 나이 먹은걸 생각지 못했던 탓도 있겠다.
이런 생각의 흐름 끝에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도 '남들처럼' 그럴싸한 리조트에 묵기로 결정했고. 가성비 본능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한 채 푸켓 방 타오 비치의 '사이 라구나(Saii Laguna) 리조트'로 향했다. 방 타오 비치는 푸켓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이다. 그리고 커플이나 가족 여행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상급 리조트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3박 4일 간 이곳에 머물렀고, 왜 사람들이 리조트의 편안함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지 완벽히 이해할 만큼 만족했다.
우선 약간의 돈만 더 지불하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배우자는 리조트 내의 타이 마사지를 매우 흡족해했는데, 지불한 금액은 한국 기준으로 무척 저렴했다. 그리고 수영장과 방에서 (거의) 마음껏 술과 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리조트 옆 해변의 레스토랑과 바 들도 배짱 장사를 하는 곳이라 어차피 가격 차도 크지 않았다. 리조트 내 수영장에 있는 똠얌 레스토랑의 해피아워 시간에는 허브향이 가득한 모히토를 매우 저렴한 가격(150바트)으로 즐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후기들에서 확인한 대로 이 리조트는 수영장이 참 잘 되어있다. 둥그런 한 면의 풀을 두고 베드가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면의 풀이 있어서 수영 못하는 우리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수영장 바로 앞이 모래사장이고 바다다. 수영장에서 놀다가 바닷가에 몸을 담글 수 있으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잘 관리되는 리조트 내에서는 온전한 휴식이 보장된다. 체크인 시 설치 가능한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호텔 측과 실시간 연락이 가능했고, 룸 서비스도 앱으로 요청하면 곧바로 답변이 온다. 특히 전화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 같은 분들은 더욱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우리 방과 리조트 곳곳이 깨끗하게 관리되니 어느 것 하나 더러워질 새가 없었고, 수영장 출입이 쉬운 덕분에 그 더운 푸켓에서 땀이 뭔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당연히 푸켓에는 훨씬 더 저렴한 숙소가 가득하고, 몇십 바트면 세탁을 해주는 곳도 있다. 과거의 나도 그런 스트릿 감성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매번 시켜먹던 애들처럼 룸 서비스를 이용했고, 난생처음 티셔츠, 속옷 별로 가격이 매겨지는 세탁 서비스도 받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휴양지 리조트로 가는지.
어린 시절 우리가 36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있는 등의 고초를 겪으며 다닌 것도 여행이고, 리조트에서 팔자 좋게 늘어져있는 것 또한 여행이다. 로맨틱 코미디든 호러물이든 간에 우리가 떠날 때의 마음가짐에 따라 선택하면 그만인 것. 우리는 이번 경험 덕분에 휴양지와 일반 여행지를 번갈아 갈 계획이다. 다가오는 9월에 포르투갈 갈 준비는 이미 마쳤고, 내년엔 발리에 가봐야겠다.
교훈: 휴양지가 괜히 휴양지가 아니더라. 사람들이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