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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Jul 14. 2022

방구석엔 얼음이 귀하다

백수로그 EP 05



 회사 다닐 땐 간편했다. 사옥의 카페에서 "아아 한 잔이요."만 하면, 얼음 가득한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엔 직장인들을 겨냥한 15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집이 넘쳐났다. 그게 아니라도 편의점에선 얼음만 채운 컵을 싼값에 가질 수 있었고, 탕비실의 거대한 제빙기에는 언제나 얼음이 가득했다. 개인 텀블러에 에스프레소를 내려 얼음을 가득 채우기는 배우자가 내 배를 만지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당시 우리 회사 커피 맛없다고 한 점 반성한다.)

 집에선 그 반대다. 얼음틀에 생수를 정갈히 붓고 얼려서 통에 담아야 한다. 급할 땐 수시로 냉장고를 열어 냉동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 그 마저도 한 번에 얼릴 수 있는 양이 넉넉지 못해서 겨우 시원해질 만큼만 써야 한다. 보통 아이스 뭐시기 음료를 마시면, 다 마실 때까지 얼음이 남아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이젠 좀 마시다 보면 얼음은 금세 사라진다. 그룹 PT 하는 날엔 큰 텀블러 가득 얼음을 담아와서 하루 종일 살살 녹여가며 마시지만, 한참 부족할 뿐 아니라 영 폼이 나질 않는다.

 마침 여름을 맞아 정수기 업체에서 '얼음 나오는 정수기' 광고를 많이 한다. BTS까지 나와서 코웨이 사라고 난리다. 하지만 우리 집 주방엔 더 이상의 자투리 공간이 없다. 그리고 매월 렌탈료를 내야 할 기기를 그깟 여름 한정으로 쓰겠다고 들일 수는 없다. 잘 돌아가는 냉장고로 어찌어찌 버텨보는 수밖에.


노트북만 없으면 '이 자리 안 써요?'라고 묻던 내 자리, 2021


 회사를 그만두고 맞이한 첫여름. 추워서 긴팔 껴입던 사무실은 더 이상 없다. '맞아. 그때 너무 추웠어.'라며 현재를 미화하고 싶지만, 이 건은 도저히 방도가 없다. 무더운 날 우리 집 에어컨은 24~27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가동된다. 아직도 겨울 이불을 덮는 배우자는 그것도 충분하다고 하는데, 요즘같이 더운 날엔 쇼핑몰 마냥 찬바람 숭숭 불던 사무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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