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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Jul 28. 2022

우리 그만 좀 성장하자

백수로그 EP 08

 나는 인생의 몇몇 시점 외에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책을 고르고 택배 받는 것을 좋아하지,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주로 지역이나 역사 그리고 유명 소설가의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애정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절대 읽지 않는 건 있다.

 그것은 '자기 계발' 분야이다.

 자기 계발 류의 서적은 어릴 때 월요일 아침마다 듣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말씀을 현대 독자들의 환경에 맞춰 갈고 다듬는 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들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이제 좀 그만 들기를 바랐을 텐데, 내 돈 내고 그걸 읽고 강연에 참석한다니... 교장 선생님들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며 참 좋은 말씀만 해주셨는데, 왜 그들은 감칠맛 나게 얘기해주지 못하셨을까 원망스럽다.

Liverpool, UK, 2004 (수십 년 경력으로 무장한 비틀즈 투어 가이드)


 요즘 많은 회사에서도 직원들의 성장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아마도 개인의 능력 향상이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하겠지. 내가 다니던 회사도 매년 자기 계발 계획을 세워서 제출하라 했지만, 승진이나 연말 평가는 대개 관련 매출순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직원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곳도 있을 거다. 그 회사 직원의 만족도는 들어봐야 아는 것이고.

 각종 블로그 류의 시장서에도 가장 유망한 카테고리가 바로 이 자기 계발이다. 여러 필드를 넘나든 이력의 글쓴이들은 How to, What to 등의 인생 지침을 거침없이 제시하고, 성공한 사람의 비밀을 매우 명확하게 정리해서 알려준다. 나처럼 삐딱한 사람은 '누구신데요?' 하며 가볍게 넘긴다지만, 거기에서 일종의 은혜를 받고 글쓴이의 말씀에 열중하는 분들도 참 많다.

 글을 쓰는 행위는 정보를 교류하는 도구이다. 서울에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떡볶이 집 정보를 알려주고, 잘 꾸민 가상의 세계를 소설이라는 형태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런 글들은 뒷 광고만 잘 거를 줄 안다면 인생 맛집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저 세상 구경도 시켜준다. 그런데 '너는 이거 먼저 하고, 그다음엔 꼭 저거를 해!' 하는 건 정보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 신내림 받은 원균 도사님이 "너 작년에 죽을뻔했잖어."라고 겁주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더 클 일도 없다. 우리 그만 좀 성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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