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라임 Aug 02. 2022

(What's the story) 나의 인생 앨범?

백수로그 EP 10



 MP3 플레이어라는 요상한 기기를 갖기 전까지 내가 행하는 소비의 1순위는 음악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앨범을 샀고, 같은 해 Boyz || men의 'End of road'로 팝 앨범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곧 Bon jovi의 ‘Keep the faith'라는 앨범으로 록에 입문했다. 당시는 모두 카세트테이프로 구매했고, 앨범을 구매한 레코드샵이 어디인지, 들어보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렴풋 하지만 모두 기억한다.



 당시 뭣도 모를 또래 중학생들   많은 수가  음악을 즐겨 들었다. 아마도 TV에서 알려준 음악이 아니라 '내가 찾은 음악'이라는 자존감에  애착을 갖았던  같다. 거기에 본인의 문화적 소양이  단계 발전한 것만 같은 환상도 있었다. 그들은 2병이 도진 시점엔  조비를 입문형 밴드로 취급해버렸고, 하드록과 헤비메탈이 아니면 음악 취급도  해주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팝을 들으면 무시했고, 가요를 들으면 그냥 아는 체도  했던 시절이다. 우리는   음악을 찾았고,  미친 플레이어를 쫒았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들은 각자의 취향 따라 흩어졌다. 여전히 헤비메탈을 듣는 애들도 있었고, 새로운 대세였던 얼터너티브 쫓아간 애들이 많았다. 뜬금없이 뿌리를 찾아 블루스로 회귀한 아이들까지. 여러 음악을 향유했고, 서로 카세트테이프와 CD 빌려주며 새로운 음악을 권했다. 별로  친한 아이가 건넨 음악이 너무 좋으면 사람이 달라 보이기 까지했다. (나에겐  당시 듣던 음악이 가장 귀했고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 우연히 Oasis라는 영국 밴드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라는 앨범을 빌려 듣게 되었다. 이미 데뷔 앨범이 히트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밴드의 이름과 앨범 커버(<Definitely, Maybe>) 너무 촌스러워 손에 쥐어보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때 받은  그들의  번째 앨범. 조금은 투박한 사운드, 고음도 별로 없는데 정제되지 않은 보컬, 일부 비틀즈스러운 곡들까지... 미국의 밴드 사운드에 익숙한 나에게 세련되게 들리진 않았지만, 매우 신선했고 (아니 보다  정확히는 로큰롤) 본질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담백하면서 장엄한 Wonderwall,  감기는 멜로디로 구성된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곡을 가장 좋아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오아시스는  나의 최고이자 최애 밴드였다.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Oasis, 1995



 나의 10대 후반, 그리고 20대의 거의 모든 순간에는 그들이 있었다. 그들의 새 앨범이 나오는 날, 그걸 사서 플레이어에 넣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나의 이어폰에선 늘 그들의 음악이 나왔고, MTV에 나오는 멋대가리 없는 뮤비를 계속해서 시청했다. 난생처음 정모를 나가본 게 Daum의 오아시스 카페 모임이었고, 군 제대 후 그들을 보기 위해 일본까지 가봤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스키장 같은 곳에서 하는 후지 록 페스티벌이었는데, 당시엔 그들의 공연을 본 몇 안 되는 한국인이 됐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후 아일랜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오아시스의 곡을 기타로 연습하던 친구에게는 맥주를 건넸다. 매우 쓸모없는 일이지만 이미 갖고 있는 그들의 CD를 왠지 더 오리지널스러운 Made in UK 것들로 새로 사 바꾸기도 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요즘도 가끔 "너 아직도 오아시스 좋아하냐?"라고 묻는다. 여전히 음악을 듣느냐는 질문이라면 당연히 "네"라고 할 테지만, 덕질도 하냐며 묻는다면 "아뇨"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오아시스라는 밴드는 세상에 없다. 팀은 폭파된 지 오래됐다. 메인 멤버인 갤러거 형제는 아직도 각자의 프론트 맨으로 음악을 한다. 하지만 그 전처럼 새 싱글을 오매불망 기다리지는 않는다. 가끔 기분이 내킬 때 예전 곡들을 듣는 수준이다. 그것도 유튜브로.

 글을 다 쓰고 보니... CD나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여 소장하는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멜론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온라인 음원 플랫폼으로 시작했을 분이라면 충분히.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앨범을 구입하여 소장한다는 것이 매우 소중했던 한 아재의 옛날이야기쯤으로 받아주시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끼리만 읽는 거 아니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