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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Aug 04. 2022

무슨 일 하세요?

백수로그 EP 11


 그룹 PT 오전 수업에는 아무래도 어머님들 위주의 여성분들이 많고, 보통은 열 명 조금 넘게 참석한다. 꾸준히 참석하는 남자 회원은 나 포함 셋이고, 가끔 나오는 남자분이 한 명 더 있다. A라고 하겠다.


 매일 운동 프로그램이 바뀌고, 그에 따라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진행한다. 오늘은 3인이 한 조가 되는 팀플. 나는 A, 그리고 또 다른 남자분과 함께했다. A가 운동을 하는 중에 우리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30킬로를 감량했다는 친구에겐 학생 같아 보인다고 했고, 나에겐 대뜸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더니 자영업 하시냐고 물었다. '형님' 나이에 이 시간에 운동하는 걸 보면 자영업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30킬로 감량남의 신상은 금세 털렸다. 감량남은 학생이 아니고, 오후 1시에 출근하여 10시에 퇴근하는 30대 직장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IT업계에서 일했고, 전 직장은 판교에 있으며 올해 퇴사했다는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다행히 우리의 정보만 캐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A 역시 본인이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가끔 오전에 올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 소상히 밝혔다.


 그는 퇴사를 했다는 나의 거취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IT 쪽이면 프리랜서로 일 하시겠네요. 그쵸?!"라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심화 질문에 당황했지만, 다행히 내가 바벨을 들 차례가 되어 대화는 잠시 중단됐다. 하지만 그는 '이 형님이 뭐하고 사는지' 꼭 들어야 했나 보다. 내 운동이 끝나자 '자기 친구도 IT 쪽에서 프리랜서로 일해서 잘 안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아마 내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논다는 옵션은 그의 머릿속에 없는 것 같았다.


 A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네. 뭐. 가끔."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프리랜서가 더 잘 번다면서요. 다 알아요."라고 했고, 그제야 다 이해했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나는 아마 최근에 전 직장의 팀장님과 새로운 해외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 사실을 억지로 떠올리며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을 아직 한 적이 없으니,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배우자, 그리고 전 직장 동료들 말고는 내가 백수로 온전히 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퇴근했니?"라는 부모님께도 "네"라고 답하고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한다. 꾸준히 일하던 아들내미가 집에서 논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실 부모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 외 사람들에겐 나의 백수 라이프가 불필요하게 화제가 될까 늘 조심스럽다. 번듯한 이유도 없고, 어찌 포장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니까.



로또는 산다, 서울, 2022


 거짓말만 늘어간다. 하지만 일단 계속 그래야 할 것 같다. 노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노는 게 최고니까. 당분간은 조용히 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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