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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May 03. 2022

아침은 그대로, 요일은 저리로

백수로그 EP 01

Lisbon, 2004



백수의 삶을 시작하기 전 나름 꼭 지키자고 한 것이 있는데, 바로 "낮과 밤이 바뀌어 살지는 말자."는 것이다.


과거 내가 어디 매여있지 않을 때를 생각해보면, 기간이 길어질수록 잠드는 시간이 아침에 가까워졌다. 예외 없이 대부분이 그랬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활발히 움직일 때 난 잠을 자고, 이제 그들이 쉬려고 하면 그제야 난 일어나서 단골 커뮤니티 글들을 깔짝깔짝 하는 패턴. 사실 그 시절에도 나름의 낭만은 있었다고 생각하고, 과거를 후회하거나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때와 다른 나의 상황. '배우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 옆의 배우자는 화, 금, 일요일에 쉰다. 보통 6시 50분쯤 일어나서 입소 2주 차 훈련병 마냥 빠르게 샤워를 하고, 머리는 절대 말리지 않은 채 7시 30분 전 출근한다. (아직 그녀가 드라이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늘 거르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도 아니어서 딱히 내가 해줄 건 없다. 하지만 일하러 떠나는 그녀에게 아침 인사는 하며 내 하루도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퇴근 후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는 '퇴근 후 맥주 한잔 할 때'를 최고의 시간으로 쳐왔다. 그러면서 서로 일자리에서 가져온 고충을 풀고, 빠니보틀 류의 여행 유튜브를 보면서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나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그 시간들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라, 내 처지가 바뀌었다고 무시할 수 없다. 출근 전후 루틴을 함께하려면, 가급적 같이 잠들고 일어나는 패턴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한편으론 요일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중이다. 그녀는 토, 일요일에만 쉬는게 아니기도 하고, 쉬는 날이라고 늦잠을 자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7시 반을 목표로 잠에서 깨다 보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매일을 '오늘 그녀가 쉬나? 내일은 일하나?' 정도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딱히 내가 해주는 건 없지만, 머릿속은 그렇다는 거다.


가끔 좋을때도 있다. 지금이 일요일 밤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내일 회사 갈 생각에 깝깝해했을 내가 떠오른다. 그 외에도 꿈에서 코딩을 하며 버그를 고치던 기억. 다다음주에 지방 현장에 가서 원인을 찾아야 할 일들 걱정에 하루 종일 불안했던 일.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세상 무너진 듯 걱정하던 일 등등. 월급 꼬박꼬박 주는 건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다닐 가치가 있었나?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게 싫어서 나왔다. 그리고 일단은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현재 월수금 크로스핏에 월수 필라테스까지 하려니 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시간 변경을 고려 중이고, 왠만한 일은 목요일까지 마쳐놓고 금요일은 그녀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난 그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만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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