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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May 23. 2022

인도 냄새

백수로그 EP 02

지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집은 웃풍이 심해 겨울에는 틈이란 틈은 모두 막아야 한다. 또 방이 데워지는데 한참이 걸리기에 환기는 대청소할 때나 겨우 몇 분 하는 정도고, 무엇보다 배우자께서 추운걸 정말 정말 싫어한다. 어느 정도냐면 집 앞에 잠깐 나갈 때도 내복에 기모 바지까지 챙긴다. 그리고 정말 괜찮은 나한테 "오빠 진짜 안 추워요?"라고 수시로 묻기까지 한다.


최근 들어 다행히 추위가 물러가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할 수 하고 (물론 그녀가 출근한 후에), 인센스 스틱까지 태우면 은은한 향까지 만끽할 수 있는 시기가 왔으니까. 오늘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90년대 주공아파트식 집에서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인 아이템. '나그참파' 인센스 스틱을 소개한다.


우리집 방구석, 2022


나와 배우자는 각각 다른 시기에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인도 특성상 짧은 여행은 아니었고, 둘 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인도 여행에 대한 경험을 나누곤 하는데, 문득 어딜 가도 나던 그 '향'이 떠올렸다. 한국에선 절대 맡아볼 수 없던 그 매캐함. 왠지 소 똥 천지일까 대번에 맘에 들지는 않지만, '인도'를 깊게 생각하면 스멀스멀 올라와서 싫지만은 않은 그 향.


물론 인도의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향을 태우지는 않을 것이고 실제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 나는 가장 유명한 '나그참파'를 주문했다. 뭐 이런 거까지 정식을 붙이나 싶은 수입사에서 구매했고, 택배 상자만 열어봐도 뉴델리의 빠하르간지 한복판 감성이 느껴진다.


미국의 히피들도 이 향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딱 할 일 없는 사람이 이국적인 맛을 보기엔 이만한 게 없다. 심신이 안정되는 듯한 착각까지 가능할 뿐 아니라, 한 번 두 번 경험이 쌓이다 보면 덤으로 넣어준 다른 향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난 오리지널 나그참파를, 그녀는 재스민 향을 가장 좋아한다.


피우는 즉시 온 집안에 그 향이 가득하지만, 환기를 한 상태라면 잔향이 불편할 정도로 오래 남지는 않는다. 차 한잔 올리고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기 참 좋은 아이템. 집에서 요가나 명상 같은 걸 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구비해두었을 것 같고, 그 외 아침잠 많은 분들도 환기, 커피 그리고 나그참파 콤보라면 극복 가능할 것이다.


다만 환기를 해야만 해서 즐길 수 있는 계절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나도 몇 년 전에 대량으로 구매했는데, 양이 빠르게 줄지는 않는다. 또한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입장이라면 '이거 대체 뭔 냄새냐?!'며 등짝 맞을 수 있으니 유의하기 바란다. 골방에서 방문 닫고 피워도 분명 안방까지 들어간다.


끝으로 인도 여행에 대해 할 말이 더 있는데. 난 인도 다녀온 게 무슨 훈장인 거 마냥 인도 예찬론을 설파하는 인도 환자들에 거부감을 갖고 있고, 참 좋았지만 또 갈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판공초가 있는 인도 북부 지역이 너무 당긴다. 끝없이 펼쳐진 불모지, 그 끝에 있는 거대한 호수. 살 수는 없지만, 여행으론 모험과 풍광을 모두 얻을 수 있을듯한 그곳을 언젠가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판공초 인근의 숙소에서 손님 왔다며 인센스 스틱에 불 붙여주는 사장님 미리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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