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투어 때문에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했다. 플릭스 버스가 워낙 제멋대로 취소되니까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오후 3시에 LA에서 출발하는 표로 예매했다. 혹시 취소가 돼서 4~6시에 LA에서 출발하더라도, 자정부터 시작하는 투어에는 늦지 않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다행히 오후 3시 플릭스 버스는 취소되지 않았고, 꼬박 6시간을 달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다만, 원래 내리려던 곳과는 멀고, 치안이 좋은 곳은 아니라고 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우버를 불렀다. 거절을 2번이나 당하고 나서야 세 번째 우버를 타고 호텔 거리로 향했다. 우버 기사님은 대부분 남자인데 뽀글 머리의 텐션 높은 아줌마 기사님이 오셨다. 하이 텐션으로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 덕에 차를 타자마자 우버를 기다리며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져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호텔 거리로 향했다.
고속도로에서부터 보이는 라스베이거스의 불야성은 심상치 않았다.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보는데도 호텔이 얼마나 큰지 한눈에 가득 들어왔다. 원근법을 무시한 크기였다.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대로 하라스 호텔에 내려, 배를 채우러 근처 인앤아웃을 갔다. 카지노로 라스베이거스답게 모든 호텔의 1층에는 카지노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나는 마음에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단언컨대, 미국에 있었던 날들 동안 단톡방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다. 다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며, 슬롯머신 한 번 당겨보고 오라며 와글와글 카톡을 보내왔다.
도박이 벌어지는 초록색 테이블을 지나 인앤아웃에서 저녁 10시나 되어서야 식사를 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먹는 첫 끼였다. 다 먹고 나니 슬슬 호텔 거리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밤 산책이라니! 총과 마약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밤 산책이라니! LA에서는, 심지어 샌디에이고에서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선 모두가 나름의 관광을 즐기는 인파 사이에서 나 역시도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밤 산책을 즐겼다. 물론, 고약한 대마초 냄새는 간간이 났지만 다들 웃으며 돌아다니는 분위기에 나도 선뜻 낯선 이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호텔과 가게를 구경했다.
도로를 두고 양옆으로 늘어선 호텔들은 놀이 기구, 분수, 조명, 동상 등으로 시선을 한껏 사로잡았다. 호텔 별로 각기 테마도 달라 한 호텔에서 다음 호텔로 넘어갈 때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를 테면, 시저 호텔을 지나갈 땐 고대 로마인 것 같다가, 트레저 호텔을 앞을 지나가면 현대로 넘어오는 것 같았다. 하라스 호텔은 테마파크 같았고, 어떤 호텔은 이름부터가 뉴욕뉴욕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와 현대 미국 도시와 테마파크가 그 큰 거리에 다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구경하면 구경할수록 '깔끔하고, 환하고, 화려한데... 뭔가 빠진 것 같아.'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잠깐 트레비 분수 모형 앞에 걸터앉아 거리를 죽 둘러보았다.
화려했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아름답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규정을 해보자면, 통일성, 고즈넉함, 우아함, 연속성 같은... 눈은 사로잡지만 마음에 와닿는 '정취'를 느끼기 힘들었다. 가창력 좋은 가수들은 많은데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진 여러 무대에서 동시다발로 노래를 불러, 마치 멋진 소음을 연상하게 했다.
투어를 한 시간 앞두고 관광객들에게 한껏 꼬리를 펼쳐놓고 있는 호텔 거리에서 벗어나 카지노 화장실 앞에 붙어 있는 바에 앉아 생각했다. 난 그저 그랜드캐년이 보고 싶을 뿐인데, 대자연을 마주하기 전에 보는 게 대인공(?)적인 풍경이라니! 마치 짠 걸 잔뜩 먹어서 물을 찾는 사람처럼 그랜드캐년이 더 보고 싶어졌다.
투어 차량에 올라탔다. 라스베이거스 사인과 별구경을 마치고 차에서 곯아떨어졌다. 새벽을 달려 마주한 그랜드캐년 앞에서 먼 거리를 달려온 고생은 다 날아가고 어느새 선선한 아침 공기만이 그 많은 인위적인 것들을 거쳐 오느라 수고했다고 다독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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