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건 깨지고 부서지다 결국 유연해진다는 것
대부분 그랜드캐년 투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1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호텔 거리의 호텔에서 하루를 묶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숙박비를 지출하고 싶지 않아 바로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가는 그랜드캐년 투어를 신청했다.
대륙은 대륙이라 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LA에서 낮 3시에 버스를 타서 한 번도 내리지 못하고 라스베이거스에는 밤 9시나 다 되어서야 내렸다. 늦은 시간이었고, 가이드님에게 내가 내린 곳이 안전한 지역은 아니란 얘기를 들은 터라 어서 우버를 타고 호텔 거리로 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우버가 2대나 근처를 헤매다가 떠나버렸고, 초조한 마음으로 세 번째 시도 끝에 겨우 우버를 탈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덕이었을까?
뽀글뽀글한 동그란 파마머리에 호쾌한 말투와 화려한 손동작까지, 어느 미드에선가 본 듯한 흑인 아주머니 기사님이 날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심지어 차도 현대 소나타였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탁, 문을 열고 차를 타는 순간, 나도 모르게
"Good evening, my savior. I'm really waiting for you!"
(안녕하세요, 나의 구원자!! 드디어 오셨군요!! TOT)
두 대나 보내고, 세 번째 우버예요."
하고 우는 소릴 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Oh, dear."라고 운을 떼시면서
"손님 연락을 받았으면 와야지, 왜 다 와서 중간에 돌아는 거야?"라고 화도 내주셨다.
원래는 차 타고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자동차로 먼저 수다를 시작했다.
"이 차 현대 소나타잖아요. 저 한국에서 왔는데, 이 차 너무 반가워요."
그러자 기사님은
"그래요? 차가 아주 편해. 옵션도 다양해요."라며 차의 오디오나 쿠션감도 좋다고 칭찬을 우르르르 쏟아내셨다.
그 뒤로도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가는 동안 창밖으로 호텔과 호텔에서 설치한 놀이기구들이 많이 보였는데, 트럼프 호텔도 있었다.
"저 호텔은 진짜 트럼프 거예요?"라고 물어봤는데
"트럼프 거였는데, 지금은 아닐 걸요? 팔았대요. 그리고 대선을 또 준비한다네."
"또요? 왜요?"
"글쎄 말이야, 왜 또 하려는지. 자기 사업 때문이겠죠, 뭐."
그러다가 기사님은 본인 이야기도 해주셨다. 원래 시카고에 살다가 라스베이거스로 넘어왔다면서,
"시카고는 정말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예요. 미국 다 그렇지만 내가 살던 곳은 더 그래. 우리 외할머니가 차이나타운에서 한 평생 사시면서 아시아 사람들이랑 더 자주 어울리셔요. 그래서 나도 아시아 음식이나 아시안이 아주 익숙하지~ 어릴 때부터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랑 어울리다 보니까 어떤 것이든 다 어색하지 않고 다 잘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니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셨는데 할머니는 90대지만 항상 배울 게 있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배우라고 말씀하시며 자신도 그렇게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90대면 무언가를 더 배울 기력도 없을 것 같고, 보러 온 손녀를 반가워하기만 해주셔도 감지덕지일 것 같은데, 새로운 걸 배울 게 있으면 배울 자세가 늘 되어 있단 말에 배우는 게 뭔지 생각해 보았다.
'배운다'라는 걸 '기존에 알고 있는 걸 버리거나 추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한다.'라고 풀어낸다면 나는 어째 영 젬병인 듯싶기도 하다. 원래 하던 것과 다르게 하는 건 늘 어렵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이직한 뒤 생활이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이직을 하고 나서 같은 직무로 이직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안 됐다. 상사가 말한 대로 바뀌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조언도 구하고 나 나름대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상황은 귀 막고 단어를 전달하는 가족 오락관으로 흘러갔다. 아무리 애써도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말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는 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만 이어졌다. 반복되는 고통 끝에 기권을 선언했다.
난 이 기간 동안 실제가 어떤지는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으며, 임계점을 넘는 스트레스가 오면 물질적인 보상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뭔갈 배우긴 배웠지만 '유연한 변화'가 아닌 '아픈 교훈'으로 결론난 배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기사님과 대화를 하면서도, 지금 이 에피소드를 쓰면서도 '배움'을 떠올리면 '교훈'과 연상되면서 입이 쓰다. 때로는 교훈을 얻느니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게 더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났는데도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라는 게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같은 회의적인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와 자기혐오가 뿌옇게 흘러내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나에겐 '배운다'라는 건 '아프다'와 같은 말이다. 85도 정도밖에 찢을 수 없는 다리를 180도까지 찢어보려고 낑낑대는 짓이다. '으어억!'하고 소리를 내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볼품없는 꼴을 보이는 것이다. 유달리 독선적인 구석 때문에 더 고역스러운 날도 있고, 근육통에 시달리는 날도 아주 많다. 몸만 유연하지 않으면 됐지, 사고방식도, 행동 양식도 각목이 따로 없다. 아프지 않고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을까? 아프지 않고 배우는 날도 올까? 다리를 쉽게 쫙 들어 올려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처럼 새로운 걸 능숙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그런 날. 쓰면서도 오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삶은 언제나 하나를 넘으면 자란 만큼 또 도전도 키워서 던져주기 마련이라, 나는 영영 고통스럽게 다리를 찢을 거다.
그러니 '배운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통증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어색하다고 느끼는 정도면 그럭저럭 아프지 않게 배우는 걸 테지만 지적 받고, 괴로워하면서 그 사이에서 의미를 건져낸다면 그건 많이 아픈 배움이 되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괴롭고 볼썽사나운 건 확정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배우려고 한다. 다리를 열심히 찢어보겠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배우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은 채 한쪽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 갈 일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힘들더라도 무엇이 됐든, 어디서든, 누구로부터든 조금 더디고, 조금 더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꼴을 더 겪어야 한대도 또 배우는 것이 낫다. 그렇게 배우고 나면, 열심히 찢어본 다리만큼이나 삶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으리라, 고착되기보다 너른하게 풍파를 보내고 말랑하게 충격을 흡수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나도, 당신도.
기사님과는 즐겁게 떠들면서 20분 정도 달리고 나니 어느새 목적지인 링큐 호텔에 도착했다. 서로 활짝 웃으며 헤어지고, 폰 화면에 평점과 팁 화면이 떴다. (우버와 리프트 앱은 자동차에서 내리면 기사님 평점과 팁을 얼마나 줄 거냐고 묻는다.) 보통 땐 얇은 지갑 때문에 평점은 좋게 드려도 팁은 잘 안 드리는데, 이번엔 평점도 최고점으로, 팁도 3달러를 꾹 눌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5천원이었다.
-2023.8.29
#라스베이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