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코끝으로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미국은 주 별로 법이 다르지만 여행 갔던 LA와 샌디에이고는 캘리포니아 주로 대마초가 합법이다.
(출처 : https://www.rollingstone.com/feature/cannabis-legalization-states-map-831885/)
그러다 보니 LA에서도 대마초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뉴스에서 이웃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경찰이 출동했더니 대마초를 실내에서 키우고 있었다, 란 사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땐 '냄새만 맡고 어떻게 신고를 하지?' 싶었다.
하지만 막상 LA에 가서 대마초 냄새를 맡게 되니 지린내 나는 풀을 태울 때 나는 것 같은 향으로 누구나 난생처음 맡아봤대도 바로 알 수 있을 냄새였다. 으으. 참 신기한 것은 대마 냄새는 할리우드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없어지고, 코리아 타운을 지나 다운타운으로 내려갈수록 짙어졌다는 거다. 이동할 때도 우버/리프트에선 대마 냄새가 나지 않지만, 버스에선 간혹 나고, 지하철에선 코를 틀어막고 싶었다. 게다가 부촌으로 유명한 샌디에이고에서는 대마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없다. 빈부격차를 건물이나 옷차림뿐 아니라 후각으로도 알 수 있다니. 그것도 마약 냄새로.
웨스트 라이프(Westlife)의 업타운걸(Uptown girl)이란 팝송이 떠올랐다.
'업타운 걸'은 '부잣집 아가씨' 란 뜻인데, 가사 내용이 '다운타운에 사는 내가 업타운 걸을 만났다.', 즉, '좋은 것만 누리던 아가씨가 퍽퍽한 현생을 줄기차게 살아내는 나(노래의 화자)를 만났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진짜로 LA에서 '다운타운'에 가보니 '업타운'이 뭘 의미하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면서 '업타운 걸' 노래 속 화자인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아가씨를 만났기 때문에 신이 났던 게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됐다.
할리우드는 단순히 LA 다운타운보다 지리적으로도 위에 있을 뿐 아니라 동네도 더 쾌적했다.
할리우드에서 코리아타운, 다운타운으로 올수록 주거, 상가, 회사가 점점 더 섞였는데, 그리피스 천문대 근처의 할리우드 지역 집들은 가로수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주택은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었다. 조경에 큰 나무를 써서 주택 전체를 감싸놓은 집들도 꽤 있었다.
코리아타운 쪽으로 가면 주택들 크기가 아담해지면서 옹기종기 주르륵 모여있고 도보로 10~30분 거리에 상가가 있는 듯했다.
다운타운은 주거, 상가, 회사가 다 모여있어서 편의성만 보자면 위의 두 지역보다는 좋을지 몰라도 확실히 혼잡했다.
LA에서 어디든 보였던 홈리스도 유독 다운타운에서는 훨씬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주거는 단독주택은 보기 어려웠고, 보통 3층 정도 되는 긴 복도식 건물이거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띄었다.
이렇다 보니 눈에 보이는 주택, 회사, 상가가 섞인 정도에 따라 치안이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긴장감을 조율하는 볼륨 스위치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코였다.
대마 냄새에 따라 긴장감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예를 들어, 긴장감이 0~10까지의 레벨이라면, 할리우드 지역의 주택가를 지나갈 땐 0~1 정도의 수준이었다. 집 자체도 예쁜 집들이 많았고, 집 앞의 정원 역시도 잘 가꿔져 있어 조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마는커녕 꽃향기와 풀 내음이 났고, 가끔 바람을 타고 오는 꽃내음에 한껏 들이쉬고 나면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보이는 것에서도, 맡아지는 향에서도 뭐 하나 찜찜하거나 무서워할 게 없었다. 걷고 있는 그 자체가 여행이고,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다운타운의 유니언 역이나 지하철을 탈 땐 긴장감이 8~10까지 올라 입이 말랐다. 특히 지하철을 탈 땐, 입구에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부터가 긴장되는데 지린내에 대마 냄새까지 섞여 정신이 혼미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중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타는 사람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라 지린내 때문에 마스크가 그리울 줄은 몰랐다. 그나마 지린내만 났다면 역해도 무섭진 않았을 텐데 대마 냄새가 더해지니 자꾸 '약에 취한 사람이 내 옆에 있을 수 있다'란 생각에 잔뜩 얼어붙게 되었고, 내릴 때까지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제껏 살면서 코로는 위생만 느껴봤지 치안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냄새에서 느껴지는 치안이라니, 순간 한국의 지하철이 그리워졌다.
현재 한국에서 대마초는 의료용으로만 재배, 유통하고, 성인 기호 식품은 아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기호 식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길거리에서, 지하철과 버스에서, 화장실 어디에서, 뒷골목에서, 건물 사이에서 느슨해진 정신머리의 향 따윈 맡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언제까지나 잘 심어진 가로수와 곳곳에 심어진 꽃과 풀로 위험 따윈 느껴지지 않고, 편안하고 느긋함이 가득하길 바란다.
-2023.8.10
#LA여행 #여행에세이 #미국여행 #미국치안 #LA지하철 #할리우드 #LA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