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단독주택과 펜스

by DDOBOM

LA에 도착한 첫 날, 유니언 스테이션에 내리자마자 너무 추웠다.

7080 바이브가 가득한 코리아 타운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가져온 옷이 어떤 옷들인지 떠올렸고, 다 하나같이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을 기대하면서 가져온 '얇디 얇은 옷'밖에 없었다.

덜덜 떨면서 우버를 기다리고, 숙소에 가서 짐을 풀자마자 어떻게 해서든 몸을 따뜻하게 해줄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2일 뒤면 그랜드 캐년 투어를 갔고, 5일 뒤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투어도 예약해둔 상황에서 지금 있는 옷으로는 천사의 도시에서 천사를 영접할 지경이었다.


구글 지도에서 보니 숙소 근처에 '로스 드레스 포 레스'라는 곳이 있었다. 도보로 1시간 안 되게 뜨길래 잔고 걱정도 슬쩍 되고, 걱정 끝엔 또다시 무식이 솟구쳐 용감하게 '걸어가기'로 했다.








IMG_8746.PNG?type=w1 구글 지도는 왜 가로지를 수도 없는 주택가를 길로 알려주는 거냔 말이다!! 으아!!



두 번이나 지름길인 줄 알고 주택가를 가로지르려 했는데, 처음 들어갈 땐 예쁜 주택들에 정신이 팔려 신나게 걷다가 끝까지 걸어가보니 펜스가 있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화는 났지만 그렇다고 거진 다 와서 우버를 부르자니 그건 그거대로 낭비인 것 같아 다리는 아프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쁜 집들을 보는 건 좋았지만 펜스를 마주하고 돌아나와 다시 길을 찾아야 할 때의 허탈감이란, 별 것 아닌데 힘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야자수들이 가로수로 있고, 그 옆에 주택들이라니 봐도봐도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익숙한 나에게는 어딜 가든 주택들이 쭉 늘어선 모습과 단지 끝의 펜스가 새롭게 다가왔다.


한국식 주택 보안과 미국식 주택 보안을 떠올려본다. 한국 아파트를 생각하면 건물 안에 들어갈 때 카드나 비밀번호를 찍고 들어가든지 경비실 '아저씨 인증'을 거치고 들어간다. 주택을 생각해보면 벽은 있다. 펜스는 잘 없고, 나무나 풀로 가려놓는 경우는 더더 없다.


펜스는 주로 길에 차를 막는 용도로 많이 설치되어 있다. 아파트 단지라고 입구에 자동차 개폐기 정도가 그나마 펜스일까? 간혹, 임대 주택 주민을 차별한다고 펜스를 해둬서 갈등을 만들거나 혹은 단지 내 골목을 막아서 한참을 돌아가게 한다는 뉴스는 봤었다.


그래, 맞다. 단독 주택이든 아파트든 '막다른 곳'을 만들어두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주택단지의 골목길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LA에서 옷 사러 갈 때 주택 단지의 길은 반쪽짜리 길이었다. 단지 안에서 자신의 집까지 가고, 집에서 바깥도로로, 그것도 한 방향으로만 오갈 수 있었다.


아마 치안 때문일 거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제각각 생긴 집만큼이나 집마다 펜스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큰 풀이나 나무를 펜스 대신해 놓는 집도 있으니 그 전체 커뮤니티를 집을 지키는 곳은 확실히 막다른 골목 혹은 길 한쪽을 막아 놓는 것이 범죄자를 잡기엔 편할 것 같긴 하다.


지름길이라고 신나서 가로질러 가다가 큰 펜스 앞에서 '아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돌아서면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시 도서관을 다니던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한국 만세.


-20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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