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이 곧 아름다움이다

by DDOBOM

LA에 도착한 첫날, 일정을 마치고 문을 열었는데, 내 이층 침대 반대편 아래쪽 침대에 누군가가 늘어져 있었다. 슬쩍 보니, 동글동글한 얼굴이지만 눈 화장이 짙어 귀엽기도 했지만 어딘지 차가워 보였다. 사회생활에 치여 낯선 이에게 서글하지 못한 나는 혼자 졸아붙어 '조용히 지내자.'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그녀가 말을 거는 순간부터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했던 건지,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말을 걸었다.


"저녁 드셨어요?"

"아, 저요? 간단하게 먹긴 먹었어요."


40달러나 했지만 작은 머쉬룸 스프와 콩 박힌 빵에 파테 발라먹고 끝난 저녁식사.



그때, 귀에 훅 들어온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저 치킨 시켜 먹으려고 하거든요. 같이 드실래요?"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알고리즘을 돌려 질문에 답하는 챗 GPT처럼 치킨을 먹을 모든 이유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하나, LA에 도착한 첫날은 아침에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고, 저녁이라고 빵에 파테나 발라먹고 온 터라 배도 꽤 고팠다.

둘, 샌디에이고에서는 한국 사람을 한 명도 못 본 덕에 혹은 탓에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서 어차피 한인 민박에 왔으니 같은 방 사람들과 친해져도 나쁠 건 없단 생각도 들었다.

셋, 치킨. 메뉴가 치킨이었다. 더 이유가 필요한가? 대답을 지체하는 건 그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실례였다.

"네! 같이 먹어요!"


미국 치킨은 치킨이 아니라 독수리 사이즈였고, 비스킷까지 야심차게 시켰으나 먹지 못했어요 ㅠㅠ ㅋㅋㅋ 아까워라!


치킨이 오기 전, DK는 이미 친해진 J, U와 함께 방에서 그날 낮에 쇼핑했던 화병과 다른 소품을 보여주면서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예뻤다. 다만,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를테면 '밀로의 비너스같이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 속 시약을 만들 것 같은 마녀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에 0.1초 정도 대답에 로딩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예뻐요! 미국 왔으면 이런 거 사야죠!"

확실히 한국에서 사려면 아마존으로 해외 배송을 시켜야 할 디자인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저희 엄마도 이런 거 좋아하셔서 저희 집에 가면 이런 소품들 정말 많아요."라고 어머니 취향도 공유해 주었다.

DK의 어머니 나이대라면 그로테스틱한 느낌의 그림을 좋아하는 분은 흔치 않을 텐데, 딸과 취향이 같고 소품을 함께 공유하신다니 분명 친구 같은 어머니의 진정한 표본이실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친구, 학업, 진로 고민 모든 걸 공유해도 반대는커녕 지지를 보내주시는 분이셨고, 아버지마저 생일날에는 꽃다발을 사들고 오실 정도로 딸 바보셨다.

DK는 영어도 유창했는데, 그 이유가 두 분 모두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아버지는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셨고 어머니께서도 지속적으로 영어를 쓸 수 있게끔 유도해 주신 덕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지 몰라도 DK는 '업종 드리프트'를 하는 과감함이 있었다.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그녀는 충실하게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다양한 업종을 거쳤고, 선택을 바꿀 때마다 미리 걱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저는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은 전공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몰래 폰으로 그림을 보면서, 아, 너무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하나도 안 듣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으로 취업하는 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이것저것 궁금한 직종은 다 기웃거려 봤다고 했다.

MD도 해보고, 또 다른 것도 해보고 등등... 그녀는 그렇게 탐색 끝에 지금의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배우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 일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도 과감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고백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기에 고백해요."

와우. 이것만으로도 턱이 떨어지겠는데, 하지만 뒤따라 오는 더 놀라운 이야기.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백하는 건 아니고, 그 사람도 절 좋아하는지 보죠."

그러니까, 타이밍도 봐서 야구 방망이 휘둘렀다 하면 홈런이라고?

이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에 나오는 사랑 받고 자라 가문의 상단을 거침없이 이끄는 인생 2회차 백작가의 막내 영애가 여기 있었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한편으로는 대체 저 원동력이 뭘까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부모님의 사랑? 그래, 그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어릴 때 생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한평생 아등바등거리기 마련인데, 그녀는 더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 듯하니 그 또한 진로 앞에서 주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것 말고, 지금의 특징은 뭐가 있을까?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며 떠오르는 답은 '솔직함'이다. 자세히 풀어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궁금해하는 걸 외면하거나 다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서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한 태도쯤 되겠다.


이쯤에서 나도 한 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내 안에서 나오는 질문에 답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나?'라고 질문했을 때, 음,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맞는 부분은 궁금해했던 업계에 도전했던 거고, 아닌 부분은 회사 밖에서 되고 싶었던 내 모습이 그렇다.

학생 때부터 콘텐츠가 제일 궁금한 산업이긴 했다. 졸업 후, 한참을 돌고 돌아 정확하게 가고 싶었던 콘텐츠를 찾았고, 운도 적당히 따라주었는지 관련 회사에 몸을 담게 되어 어설프게나마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익힐 수 있었다. 덕분에 입에 풀칠도 찌끔 하고, 경력란에 'N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이라는 기록도 한 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되고 싶었던 내 모습, '무언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단 바람 앞에선 그다지 솔직하지 못했다.

"왜 안 써? 작가 되고 싶다며!"라고 따지는 SH(서울주택공사 아니고 이니셜)에게 매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고로 작가가 되려면 다독, 다작, 퇴고라는데, 일단 '다독'도 하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회사 다닐 땐,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가 지겨워서 예능으로 마음을 '다독'이기 바빴다.ㅎㅎ) 그리고 쓰면서도 카드 돌려 막기 마냥 단어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 게 스스로 조금 한심하기도 하고, '꾸며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실제 겪은 이야기'조차 공감을 이끌어내게 쓰는 것도 어설프게만 느껴져서 쓰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되었다.


저녁 식사 마치고 리프트 기다리면서.


그래서 이번 LA 여행이 더 의미 있다.


샌디에이고와 LA 여행 중 들었던 생각을 한 자 한 자 블로그에 쓰면서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이걸 쓸 때만큼은 어떤 기대도, 실망도, 좌절도 없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내가 원했던 나, '무언가를 쓰는 나', '타이핑을 치는 나', '기록하는 나'가 될 수 있다. '무엇이 되어야겠다' 없이 내가 원하는 나를 실현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어쩌면 아직 다시 회사에 취업하지 않아서, 잠깐 밥벌이의 압박에 비껴있는 중이라 솔직할 수 있고, 다시 밥벌이를 시작하면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쟁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는 작아도 되고 싶은 모습보다 지금 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너무 오래지 않아 글로 밥을 푹푹 퍼먹을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좋겠지만 아니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건 노트북만 키면 가능한 일이니 앞으론 열심히 자판에 쏟아내 보아야지.


오늘따라 동글동글한 DK는 LA에서 돌아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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