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식이 맛 없는 건 00이 없기 때문이야.

by DDOBOM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어린이였다. 그 식성 그대로 어른이 되었고, 덕분에 세계 어딜 가든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미국에 갈 때도 큰 걱정은 없었다.


IMG_7772.jpg?type=w1 미국에서 가장 처음 먹은 음식은 브리또였다. 멕시코 음식 브리또.

하지만 맛과 가격의 밸런스 붕괴라는 의외의 문제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코로나 때 풀어둔 돈을 거둔다고 물가를 올리는 미국에서 가격이 착할 리 없었고, 그렇다고 요리를 해먹기도 모호했다.

IMG_7803.jpg?type=w1 샌디에고에서 머물렀던 호스텔에선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장을 봐서 해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유학이나 장기 출장 혹은 취업으로 가서 생활했다면 요리를 해서 먹었겠지만 2주 뒤면 올 거고, LA에 지내는 중간에 투어도 끼어 있었다. 그러니 천상 사 먹어야 하는데, 서빙하는 식당에서 먹으면 팁까지 25달러 이상, 푸드 트럭은 20달러, 핫도그, 서브웨이, 햄버거는 10~15달러 내외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맛과 가격을 충족시켜주는 선택지가 없었다.



IMG_0005.jpg?type=w1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바닐라 쉐이크까지 다 해도 10달러 내외였던 인앤아웃


가뜩이나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어딜 가든 우버를 타야 하는 마당에 밥값으로 25달러는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 부담스러운 돈을 감당하면서 맛있게 먹으려면 멕시칸 식당밖에 없었는데 멕시칸은 음식 양이너무 많았다.



SE-53f38fba-99e5-4d7d-a50d-e48d5063f048.jpg?type=w1 2~3명이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양이었는데 이 식당만 그런 게 아니라 밖에 테이블이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식사하는 걸 보면 다 이런 양이었다.


그러면 푸드트럭과 햄버거 (혹은 핫도그)에서 골라야 하는데 푸드트럭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고, 매끼 햄버거를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숙소에 조식으로 나오는 과일, 요거트, 빵을 왕창 먹어버리고는 점심과 저녁 둘 중 한 끼는 굶어 버렸다. 돌아오는 날에 가까워서는 점심, 저녁을 다 건너뛰기도 했다. 12달러 정도만 넘어가면 ‘집 근처 감자탕 집에 가면 이 돈으로 뼈 해장국 특대를 먹을 수 있는데…’하는 생각부터 들어 더 먹기 싫기도 했다. 핫도그 하나를 먹어도 맛있게 먹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 미국 음식은 4D IMAX를 보다가 무성 흑백 영화로 내려가는 다운그레이드였다.


SE-be67d20d-bce3-4d50-9a3d-e1ca8a0e2a51.jpg?type=w1 피자는 그나마 가격이 만만해서 좋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LA로 돌아온 날, 저녁에 그날의 첫 끼로 핑크 핫도그에서 짠 베이컨에 돌돌 말린 소시지를 빵과 함께 잘라 먹으며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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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나라는 음식이 맛이 없는 걸까?'

심기도 많이 심고, 거두기도 왕창 거두는 이 미대륙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가 빵과 빵 사이에 가공육 하나 덜렁 껴 넣고 케첩하고 머스타드 소스에 피클이나 할라피뇨 같이 곁들여 먹는 거라니,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중국 북쪽과 비교했을 때 둘 다 대륙에 밀가루와 고기라는 재료는 같았지만, 조리법은 중국이 찌거나 삶거나, 물에 빠뜨리는 등 훨씬 다양했다. 그에 비하면 미국은 허우대는 훌륭한데, 패션 센스는 없는 모델이었다.


핫도그를 한 입 먹고 국 대용으로 주문한 닥터페퍼를 찔끔찔끔 마셨다. 점점 더 이해가 안 갔다. 대체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동북아 3국처럼 조상님의 뜻을 받들고자 대대로 뭔가를 하는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쩌면 음식은 그렇게 영국이랑 똑 닮았는지. 독립할 때 음식도 영국에서 독립 좀 하지.


IMG_1072.jpg?type=w1 디즈니랜드에서 먹어 본 츄로스.

꿀꺽, 한 입 삼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음식엔 시간이 없었다.


밤새워 끓인 소뼈에서 나온 뽀얀 맛, 한 번의 겨울을 품고 아삭하게 삭은 배추의 맛, 콩과 고추를 찌고, 짓이겨서 빚은 다음 소금물에 고이 절여둔 맛이 없었다. 해산물과 채소도 없었다. 거친 바다를 가르는 고등어의 단단한 살, 바다 물결의 내음을 담은 미역, 말린 멸치에서 나오는 시원한 국물, 채소에서 나오는 맑고 깔끔한 감칠맛이 그곳엔 없었다.


핫도그를 우물우물 먹다가 이 나라의 음식에 시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빨간 케첩과 노란 머스타드만이 핫도그 옆에서 ‘나라도 찍어 먹어.’라는 표정으로 덩그러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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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한국에서 낮은 가격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걸어서 어딘가를 마음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음에 자부심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온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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