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여도 이상하지 않지만 방방이는 타고 싶어.

by DDOBOM

그랜드 캐니언 투어 차량을 기다릴 때, 라스베이거스의 하라스 호텔 우버 승강장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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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랜드 캐년 투어 기다리세요?"

나보다 머리 두 개가 작고, 일자 중단발에 거북목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검정 레깅스를 신고 있던 그녀는 표정도 딱딱한 검은색 같았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그녀에게 간단히 고개만 끄덕이며,

"아, 네, 맞아요."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어딘가 날카로워 보였던 만큼 눈치도 제법 빠른 것 같았다. 투어 차량이 올 때쯤 되었어도 오지 않아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재빨리 가이드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어디인지 알려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투어에 합류하게 되었으나 아침 일찍 나온 탓에 눈꺼풀이 계속 감겼고, 차에 타자마자 눈꺼풀을 따라 어색함도 잠시 감아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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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끼로 새벽에 서브웨이에 도착해서야, 같은 테이블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간단히 통성명과 나이를 말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또봄이고요, XX년 생이에요."

라고 말하자, 그녀도

"제 이름은 M이에요. 저도 00살이에요."

라고 답하며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M과 대화를 하면서 결혼했고, 아이도 있단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라스베이거스로 출장 왔다가 오늘 사장님이 하루 오프 줘서 놀러 왔어요."

라며 어떻게 미국에 오고,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도 알려주었는데, 속으로 감탄했다.

'간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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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혼은 더 모르겠고, 애는 아예 모르겠는데 M은 3살짜리 아이도 있고, 엔지니어로 콘퍼런스 겸 세일즈를 하러 온 김에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덜컥 퇴사해서 내 돈 써가면서 놀러 온 나와는 결이 달랐다. 태생적 문과로서 사회적 쓸모를 다시 찾아야 하는 나로서는 어쩌면 같은 교실에서 같은 담임 선생님 아래 공부를 했을지도 모를 그녀를 보며 살아온 시간이 바닷물 옆에 놓인 식염수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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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녀는 맹숭하지 않았다. 작은 키만큼이나 강단도 압축되어 있었다. 절경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을 때면 매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사진 찍는 나와 다르게 M은 곧잘 절벽 위로 뽈뽈 걸어가 과감하게 포즈를 취했다. 몇 번 코스를 지나는 동안 매번 절경에서 찍을 때마다 덜덜 떠는 나에게 가이드님이

"아니, 또봄 씨는 M씨 찍으면 찍잖아. 빨리 가서 서세요!"

라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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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가 그녀보다 농도가 옅다고 느껴졌던 순간은 M이 아이와 전화할 때였다. 화면 속 아이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에는 일과 투어의 모든 고단함은 다 날아가 버리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바라보는 넉넉함이 풍겼다. 이동 중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비녀 꽂은 여인을 바라보는 댕기머리 소녀가 되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귀국해서 몇 달 뒤, 카카오톡에 메신저 하나가 떴다.

'우리 방방이 타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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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이(트럼펠린)라니. 정말 다들 기운도 좋다.


'애도 없는데 거길 왜 가.' 란 말이 손끝까지 차오르는 동안 벌써 들뜬 톡 방의 대화는 방방이를 먼지 날리며 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미 친구 몇 명은 같이 다녀왔었고, 생일 쿠폰까지 발급받는 방법도 알아와 이번 방방이 모임에 활용하자고 야단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방방이는 가을 감기로 인해 무산됐고, 하던 대로 만나서 옴팡지게 수다만 떨었다. 감기가 아니었다면 아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나도 친구들과 방방이를 즐겼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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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부모님 세대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한다. 부모님 세대였다면 각자 애들 데리고 만나서 방방이를 타라고 풀어놓고 커피 한 잔씩 마실 텐데, 결혼이 선택이 된 2020년대는 같은 30대라도 누구는 애가 있어서 애들 노는 곳에 아이들 놀게 하러 가고, 누구는 애들 노는 곳 가서 놀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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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산율 0.7'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슈카월드에서 봤다. 슬프게도 올라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분기별로 아이를 점점 더 적게 낳는다는 뉴스와 지자체가 얼마 썼는지도 보도되지만 여전히 현실은 엄마가 아이와 커리어를 사이에 두고 눈물을 머금고 커리어를 놓거나, 두 개를 다 지키느라 죽어나는 선택지밖에 없다. 가끔 아이를 낳고 다시 복직하려 애쓰는 분들을 미디어에서 볼 때마다 아이를 낳는 게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 더 확신이 없어진다. 교육격차 다큐멘터리는 내가 아이를 낳는 그 순간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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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실이 무섭다. 가족과 노후에 나와 교류할 젊은이가 있는 게 인생의 절경이래도, 그곳까지 바람 부는 바위 끝에 서서 뒤를 돌아 앞을 볼 모험을 하려면 꺅, 꺅, 이상하게 소릴 지르고,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걷게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다. 게다가 현실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걸어도,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지 혹은 절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진다.

IMG_0268.jpg?type=w1 여기 걸터 앉을 때도 거진 기어기서 앉았던 듯 싶다.


M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처음 본 이에게 호기심에 실례를 범할 정도로 이기적이진 못해서 묻진 않았지만 물어볼 걸 그랬다. 어떻게 과감하게 바위 끝에 가서 서는 용기가 있었는지, 샘솟았었는지. 누군가와 같이 살아도 좋은지, 아닌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같은 선택은 어떻게 했는지, 아이냐, 일이냐 하는 무거운 질문이 자주 찾아오진 않는지, 사진을 찍을 때, 모래 동산에서 구를 때에도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선뜻 나서는 그녀에게 용기의 출처가 어딘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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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 마친 지금, 글을 쓰며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수요가 많고,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전공했다면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조금 더 쉽게 입증하고, 그 대가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게 내 미래를 쌓아 올렸을까? 그러지 못한 선택이었다면 문송한 만큼 낭중지추라도 되도록 뼈를 깎았어야 했을까? 오히려 글을 쓰는 지금이라면 모를까, 뼈를 깎을 만큼 가치를 느낄 일이 그동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타인을 향한 부러움과 내 성향에 대한 원망이 한 스푼씩 섞여 후회가 되어 마음에 안개로 피어오른다. 하지만 자욱하게 메우기 전, 타이핑을 치는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 본다. 지금 이 시간 이 글을 조금이라도 매끄럽게 쓰려 애써본다.


이제 와 다른 사람의 결과가 멋있어 보여서, 그때의 최선이 지금 불안정한 삶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지난 시간을 안타까워만 하고 싶진 않다. 비록 큰 목표 없이 되는대로 선택해서 살긴 했지만 오직 하나, 나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서 애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을 앞두고는'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되는대로 아무 일이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어야지.' 가 최선이었고, 하기 싫고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었어도 작게나마 번 돈으로 부모님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 배우고 싶은 걸 배웠다. 그러다 운이 좋게 해보고 싶었던 분야와 접점도 닿아서 일도 해봤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맞는 부분이 많지 않아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환상이나, 미련 따윈 없다. 그러니 사그라든 시간이 한 줌 아쉬움을 남겼다 해도 괜찮다. 모든 선택의 아쉬움은 그 뒤 선택의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다행스럽게도 댕기머리를 했든 비녀를 꽂았든 아무래도 좋을 시대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방방이를 타러 가도 이상하지 않지만 친구들과 방방이를 타러 가도 되는 괜찮고, 영영 비녀 꽂을 일이 없대도, 그것 또한 괜찮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당분간은 머리는 그대로 늘어뜨린 채, 또 나 자신을 어떻게 책임질지, 스스로와 합의보는데 집중해보려 한다. 그렇게 천천히, 흘러간 시간 뒤로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고운 흙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그 위에 또 다른 무언가를 심고 키울 날도 올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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