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세포가 없어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랜드 캐년과 요세미티 국립공원 투어를 하며 미국에 출장 온 엔지니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대학교 때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파리 숙소에서 암스테르담에서 지내는 엔지니어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은 회사에서 넓고 방이 많은 집을 구해주었다고 했다. 해외 생활의 고단함이 뚝뚝 묻어나는 불평이었지만 취업을 앞둔 대학생 생각엔 마냥 좋아 보였다.
이번에 직장 관두고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만나니 그때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부러웠다. 투어 중 점심을 먹으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대로인데 물약을 먹고 줄어든 앨리스처럼 다른 사람들이 커 보였다.
'다시 입사할 계획도 없고, 면접도 말아먹고 덜렁덜렁 미국으로 여행 왔는데... 나 좀 그렇다.'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서 대학까지 버젓이 졸업도 했고, 기껏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들어간 분야에선 학을 떼고는 또다시 뭘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한다니. 나이나 어리면. 그 꼴이 나 스스로도 참 보기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실에서 발도 단단하게 딛고 있으면서 틈내서 여행을 다니는 거, 해보고 싶었는데. 외국어를 전공했지만 전공을 사랑하지 못해 세상을 맞닥뜨렸을 때 그럴듯하게 내세울 만한 무기가 없이 그냥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문송한 기분은 그랜드 캐년과 요세미티 국립공원 투어를 다닐 때면 꼬장꼬장 따라다녔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나타나 지팡이로 어깨를 툭 치며,
'어이, 젊은이. 그래서 어떻게 살 거야?'
라고 말을 걸었다. 그럴 때면 눈이 번쩍 뜨이는 풍경을 앞두고도 울적했다. 1,000년이나 산 나무들 아래에게는 부질없는 고민을, 100년 살게 됐다고 뉴스에 떠들어대는 인간이라 참 부질 있게 걱정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이모냥 이 꼴인 건 누구 탓을 할 일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렇다고 수학을 열심히 할 동기가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특정 과학 분야를 너무 가고 싶어 한다든지... 수학 시험지와 문제집은 항상 불바다였다. 일차 함수를 처음 배웠을 때 좌표 위의 작대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이해할 수 없었고, 기말고사 때 다 틀렸다. 그리고 그다음 해 책상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시험지를 보며 그제야 이해했다. 그때 어렴풋이,
'아, 수학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한 학년 느린가 보다.'
싶었다.
반면에 국어는 노력했다는 기억이 없다. 책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있는 청소년 동화, 위인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그냥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국어와 사회과 과목은 썩 나쁘지 않았다. 국어나 사회과 과목, 역사는 놀이였다. 글을 읽고 인과를 찾아 순서대로 꿰어 맞추는 건 재밌었다. 이야기와 시에 나오는 인물의 의도를 알아맞히는 건 늘 설렜고, 예전 사회상을 알게 되는 건 언제나 신기했다. 태종태세문단세를 외우지 않아도 사극으로 고대부터 조선말까지 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다 알고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학습만화는 지겹지 않아서 보고 또 봤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사까지도 위인전집에서 본 게 있어서 느껴지진 않았다. 고등학교 와서 사자성어를 익혀야 했을 때도 딱히 싫지 않았다. 초등학생용 명심보감도 별생각 없이 잘 봤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국어는 1을 넣으면 2가, 영어는 1을 넣으면 1이, 수학은 1도 안 들어가 0.5를 겨우 넣어 0.3 정도 얻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국내형 문과'가 되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라고 우겨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밥벌이와는 정반대에 있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307019013
기업 채용 희망자 61%가 이공계… 문과 출신엔 더 좁아진 취업문
여느 나라가 그렇듯 우리나라도 제조업과 무역이 밥줄이라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엔지니어와 외국어를 잘하는 세일즈맨이 밥벌이하기엔 그래도 제일 좋다. 요즘엔 카메라가 많아져서 예체능처럼 시청각적으로 보여줄 게 많으면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국내용 문과는 이 중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어렵게 취업의 문턱을 넘었대도, 문과의 사회생활이 더 매운맛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단 일을 겨우 얻었대도 일이 진행되는 과정은 사람의 마음에 기대에 부응하는 비중이 높아서이다. 문과는 언제나 말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사야 일이 진척된다. 정확한 수치나 결괏값을 내는 게 때로는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기준을 잡을 수 없고, 사람을 설득하는 것만이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이 관건이다. 상대를 속속들이 파악해야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대응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LA 숙소에서 만났던 DK에게
"이공계열 친구들은 만나면 힘들어도 그런대로 회사 잘 다니는 거 같은데, 문과 쪽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죽을 맛이라고 하긴 해요."
라고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곱씹을수록 서글프다. 정 붙은 분야가 사회에선 가장 찬밥신세라니.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주인공이 어려운 운명을 타고나서라는 뜻이었나 보다. 이럴 거면 엑스트라가 좋다. 회복 탄력성라도 탱탱하면 다행인데, 내 회복 탄력성은 할미다. 어디 한 번 부딪치기라도 하면 난리 난다. 상처 잘 받고 잊지도 못하고, 한동안 자책하며 잠자리에 베개를 축축하게 만들거나 이불 먼지에 재채기하길 몇 날 며칠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면 많이 긴장되고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 상대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라면, 축하한다. 당신은 사업가로 성공할 기질이 충분하다.)
그래서 이래저래 따지다 결국 ''사'자가 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에서도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를 추리고 하나를 정해봤다. 전문직 자격증 따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지만 회사 생활은 하늘의 별 만들기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한평생 숫자라면 기함했던 내가, 핸들을 이렇게 꺾을 줄은 몰랐는데. 답이 없이 딱 떨어지지 않게 좋았는데, 숫자로 정리되는 세계를 엿보다니, 역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지금도) 회사를 다니면서 난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거스러미였다. 그렇다고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냐면 뭐, 딱 그 거스러미만큼 있었다. 맡은 걸 잘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욕심을 낼수록 더 이상해져 갔다. 파란색이면서도 빨간색으로, 싱거운데 짜게 해 달라는 듯한 요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다 양쪽으로 찢겨 가는 느낌이었다. 점점 지쳐가는 나에게 언젠가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야, 어제는 맞았어도 오늘은 틀린 게 회사야. 너무 마음 쓰면서 힘들어할 필요 없어.'
위로처럼 되면 참 좋으련만, 그게 그렇질 못했고, 끝끝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퇴사하겠습니다.'
"응~! 무슨 일이야아?"
햇빛 같은 목소리는 상념을 끊었다.
구시렁대며 떠든 내용은 대충 요약하면 이랬다.
'밥벌이를 다시 시작하면 꿈은 영영 꿈으로 남을 것만 같고, 전문직을 노려보자니 죽은 수학 세포 재생시키기가 만만치 않은 게 느껴지고(이미 정보수집을 마쳤다!), 꿈을 꾸자니 밥값을 못하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쭉 듣더니 친구는,
"그... 전문직이 돈을 잘 벌기는 하지... 그래도 이제 와서 생판 관심 없었던 분야에 매달리기보다 이참에 글을 더 쓰는 게 낫지 않아? 잘하는 걸 더 발전시켜야지!"
잘하는 거.
쿵쿵쿵, 뭣도 모르는 심장이 또 두근거린다.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 고개를 돌려 얼마 전에 나도 모르게 또 잔뜩 질러놓은 소설, 에세이, 과학 교양서가 눈에 들어온다. 글 한 편을 완성한 날이면 그날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느낌에 잠자리에 누워 헤실헤실거리고 한 자도 안 쓴 날이면 뚱해지는 내 마음. 노트북을 앞에 두고 타이핑을 칠 때면 비로소 살아있다는 기분. 이걸 포기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이 세상의 연봉 서열의 아래쪽에 있다는 건 (혹은 아예 있지도 않다는 건) 확실히 서럽다. 돈을 잘 벌지 못한다는 건 사람 구실 못하고, 미래가 없다는 것과 동의어니까. 그래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죄송해질 확률이 커진다는 거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하면 밥 굶고 살진 않는다는 말을 믿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그릇 모양을 바꿀 수는 없다. 나도 바꾸고 싶다. 수학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들 너무 부럽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
현실에 발도 단단하게 딛으면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꿈꿀 만큼 대단한 두뇌는 없다는 걸 미안해할 순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어차피 문송하다면 사고(?)나 더 제대로 쳐야겠다. 아무렇게나 마구 쓰더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견디기 힘든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생겨먹은 거 더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지. 그래야 억울하지 않겠다.
수학 세포는 부활 기도드리게 될 때 드리게 되더라도 오늘은 명복이나 한 번 더 빌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