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투어 내내 나는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투어를 다니면서 단연 가장 좋았던 것은 풍경도,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바비큐도 아닌, 그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너무 멋있었다.
그녀에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깨발랄함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 동그랗고 큰 눈, 동그란 코끝, 동그란 미소를 따라 나오는 에너지가 꼭 리트리버 같았다. 그러나 투어 첫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서 첫인상과는 다른 직업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 저는 공군 대위인데 이번에 연수 왔어요. 한미 합동 작전을 할 때 알아둬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라고 했다.
신기했다. 미국에 온 이유를 여러 사람에게 들어봤지만 그중 가장 특이한 이유였다.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 출장 혹은 주재원,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나 이직 전 직장인, 유학생 정도였는데, 군인이고, 연수...? 나도 모르게 “우와!”하고 감탄사를 떨궜다. 보면 볼수록 블랙 핑크 그 자체였다. 여성이 많이 없고, 딱딱하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조직에 저 깨발랄한 성격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일까’
‘군인 =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이라는 선입견이 와장창 깨졌다. 그렇게 외모와 말투, 직업이 주는 괴리감을 시작으로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투어 중 대위님은 사진도 많이, 잘 찍어줬다. 우리는 일행이 없고, 비슷한 나이대라는 이유로 편하게 짝궁이 되어 다녔다. 난 요세미티의 울창하고 푸른 나무 아래를 걸으며 왜 군인이 되었냐고 물어봤다. 얼핏 봐도 엉덩이 뭉개고 앉아있는 사무직보단 현장직을 할 것 같은 활발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군인이라니. 각만 한가득 잡을 것 같은 그곳에 저런 자유로운 곡선 같은 사람은 못 있을 것 같아 속해 있는 조직과 사람의 성격이 저렇게 달라도, 오래 다닐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대위님은 나의 질문에
“공무원에 관심은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군대로 정했었어요.”
라고 답해주었다. 그러나 그 뒤에
“그런데 결국 앉아서 모니터 보게 됐어요. 푸히히.”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군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 그녀가 하는 얘기 하나, 하나가 다 신기했다. 듣다보니, 사회생활 빡빡한 건 사기업이나 공기업이나 매한가지긴 했지만.
요세미티 투어 1일 차가 저물고, 숙소로 왔다. 가이드님이 준비해주신 바비큐를 먹고, 숙소 오기 전 골랐던 병맥주를 뜯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넘기면서 이제 곧 다가올 귀국과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연애도, 일도 모든 게 불투명했다. 지금처럼 살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돌아가 또 부딪칠 현실이 막막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은 다 말라 비틀어진 장미였다. 한 때는 탐스럽고 너무 갖고 싶었지만, 이제는 다 시들고, 멋없게 느껴졌다. 다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또 겨우 발붙여본 업계를 떠나 다른 업계를 또 간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또 막막한 마음이 불쑥불쑥 덮쳐왔다.
사랑도 끝이 다가온다는 걸 외면할 수가 없었다. 미래를 기약할 수도, 현재에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보아의 발렌티 속 화자처럼, ‘타이트한 그대의 틀에 맞춰진 사람이 되고도 행복한 나.’ 였지만 그 사람 곁에 서 있으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나는 나와 다르다는 걸, 그래서 끝이 보이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가 너무 괴로웠다.
믿어왔던 모든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라이트한 맥주에 마음이 느슨해졌는지 타닥거리는 모닥불에 두 손을 쬐면서 이런 복잡한 마음을 두서없이 내보냈다. 대위님은 말없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여주며, 자신의 실패를 얘기해주었다. 말랑콩떡 같은 이목구비와 해맑은 미소 아래의 상처는 딱 빛나는 미소의 거름만큼 어두웠다. 그녀는 살아온 시간의 양은 나와 비슷하지만 겪은 일의 깊이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담담한 어투에 그녀가 그때 겪었던 소동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모닥불이 꺼져갈 무렵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날, 아침에 해장 라면을 먹고 투어를 다니면서 대위님은 어제처럼 신 나게 걸어 다니고, 사진도 왕창 찍어주고, 나도 대위님을 양껏 찍어주었다. 한국에 돌아갈 날은 하루 더 다가왔지만,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거, 가서 해결해야 할 현실은 조금만 더 내려놓고, 면사포 폭포를 배경 삼아 치아가 위아래로 8개씩 보이게 웃었다.
예상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돌아와서도 한참을 더 시궁창을 걸었다. 구직도, 연애도 다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난생처음, 안달복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극적이게 살았다.
그리고 끝끝내, 반짝거렸고, 이어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인연마저 사그라졌다. 찬란했던 여름이었고, 파란만장한 엔딩이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허무해했고, 내가 싫어서 울었다. 유능하고, 성숙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면 해피 엔딩이었을 것 같은데 무능하고, 미숙하고, 비겁해서 다 망친 것만 같았다.
용암처럼 솟구치던 아픔도 가을에 실려온 찬바람을 따라 식어갔다. 그리고 그때쯤, 대위님이 모닥불 앞에서 했던 말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이기적으로 살란 뜻이 아니라, 마지막에 선택에 관한 책임은 결국 자신이 져야 하니 다른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욱여넣지 말라는, 그 대가는 예상보다 훨씬 크고 예상 밖의 일일 수 있다는 그녀의 속 깊은 따듯함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그럼 자기 자신, 나 자신이라는 게 뭘까? 나 자신이 뭔지 정의내려봤다. 나 자신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였다. 그 사람, 그 일, 있었던 일… 통과 또는 불통이 아니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순위를 잘못 매겨서 어그러진 거였다. 그러고 나서 돌이켜보니 일도 사랑도 그 우선순위가 비슷할수록 나에게도 부작용이 적었을 텐데, 나 자신보다 다른 것을 우선한 대가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치러야 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나에게 없는 것일수록 더 가치가 높고, 귀해 보인다. 게다가 이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선택도 많고, 시간도 아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 ‘돈’의 가치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이 귀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심지어 때때로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몸과 같아서 거짓말 따윈 할 줄 모르고, 맞지 않는 건 여지없이 튕겨내 버린다. 하다못해 하루 정도 이불 덮고 푹 자면 나을 수 있을 정도로 아프다면 맞지 않은 일과 사람도 기꺼이 덤벼보련만 실제로는 바닷물의 깊이를 모르고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간 흰나비 꼴을 면하기 어렵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고 발을 자를 수는 없듯 남들 보기엔 좀 허름해 보이더라도 역시 발에 맞는 나막신을 신는 편이 정상적이란 결론에 다다른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다시금 끼적여 본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슬프게도 돈이 1위에 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성공은 하고 싶다. …앞뒤가 안 맞나…?)
앞으로도 분명 나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가치가 때때로 현실이라는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날 얼려버릴 거다. 하지만 그럴 때면 요세미티 투어 펜션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손을 녹였을 때처럼 "결국,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해요."라는 말을 힌트삼아 긴장에 잔뜩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나만의 고유한 가치라는 나침반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