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약이고, 사람은 달라진다.
'퇴사하겠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회사를 안 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일도, 미래도, 관계도, 나 자신도 태워버린 기분 나쁜 매캐함은 잘 빠지지 않았다. 3주 정도 지나자 배도, 머리도 안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 않았지만 자책은 아무리 누워 있어도 가시지 않는 멀미처럼 계속 울렁였다.
그러던 어느 아침, 나는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미국 여행을 크랭크인했다. 한국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낡고 지친 환경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걸 보고 싶었다. 그래도 막상 가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아 주저했는데, 여행광인 친구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다 하게 되어 있어!"
라며 나를 등 떠밀었고, 며칠 뒤에 눈 딱 감고 티켓을 끊었다.
원래는 뉴욕에 가보고 싶었지만, 자동차 크랙션 소리나 담배 냄새 따위 일절 듣고 싶지도 맡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미드 <뉴스룸>의 시즌1, 1화에서 주인공이 '요세미티 때문에 미국이 세계 최강이야?’라는 대사를 봤는데,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러나 하는 궁금증을 이번 기회에 풀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서부로 정했다. 숙소를 찾고, 샌디에이고에서 LA로 넘어갈 기차를 예매하고, 동선을 짰다.
투어는 한 건당 비용이 만만치 않아 무섭기도 했지만
‘하긴, 날이면 날마다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평생에 한 번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데, 간 김에 할 수 있는 투어는 다 해야지. 안 그래?’
라고 생각하며 한 곳 한 곳 과감하게 투어 예약을 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LA 시내버스 투어, 그랜드캐년,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디즈니랜드,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샌디에이고에서 LA로 가는 기차가 취소되어 버스 티켓을 찾느라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해결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블랙핑크의 인사를 시작으로 영화를 봤다. 이유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눈치가 보였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더는 어리지도 않은데 대체 고등학생 때랑 뭐가 달라진 걸까. 몸만 크고, 고집만 세지고,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무능한 어른이라니, 최악이야. 호기롭게 미국행 티켓을 끊었지만 다녀온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어, 돈만 버리는 건 아닌지 꼬인 생각이 풀릴 줄 모르고 점점 더 꼬여갔다. 일도 사랑도 분명 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맞는 게 있긴 한 걸까? LA에 도착해 환승하기까지 지난 기억과 다가올 미래가 뒤엉켜 잠이 오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공항을 나와 우버를 불렀다. 첫 우버는 빨간 테슬라였다. 빨강의 화려함에 잠깐 홀려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동안 기사님이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말로만 듣던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이 한껏 내려오는 오후, 숙소로 향하면서 살짝 창문을 내리고서야 한국을 잠깐 보내줄 수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해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 않은 영어 실력을 확인하며 체크인을 했다. 라호야 코브를 시작으로 동물원, 리틀 이태리, 올드 타운 등을 하나씩 돌아다녔다. 첫날부터 룸메이트인 미셸이 상냥하게 말을 걸어줬고, 짧은 영어에도 물어보는 거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답해준 덕에 혼자 가는 게 무섭지 않냐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즐겁게 여행을 시작했다.
3일 뒤 넘어온 LA는 숨 가쁜 시티 라이프가 도시 전반에 깔려있었다. 샌디에이고도 회사는 있지만 판교 회사촌 분위기였는데 LA 다운타운은 강북처럼 회사와 시장, 상가, 편의시설, 미술관 등이 다 섞여있어 훨씬 복닥거렸다. 치안이 안 좋다는 뉴스에 긴장도 됐지만 모든 시설이 밀집된 지역답게 걸어 다니기도 좋았기 때문에 복어 같은 매력을 느끼며 제법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그랜드 캐년, 디즈니랜드,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요세미티 투어는 말 그대로 '돈 값'을 했다. 유튜브 '원지의 하루'의 원지 언니가 미국이 좋은 게 군더더기 없이 돈이 확실해서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정말로 미국은 비싼 게 비싼 값하고, 싼 게 싼 값하는 나라였다. 음식 빼고.
그러나 투어를 하면서 종종 엔지니어들을 만날 때마다 부러움에 귀국하고 나서도 한동안 지금까지 내 선택에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남의 돈으로 이 먼 곳까지 와서 일하면서도 이런 좋은 풍경을 틈틈이 누릴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너무 좋아 보였다.
'아마 이번 생에는 저렇겐 못 살겠지. 다 이과인 가족들 사이에서 왜 나만 덩그러니 문과로 태어났을까.'
샌디에이고 공항에 버리고 온 줄 알았던 고민이 그들을 보면 부러움과 섞여 다시 모락모락 피어났다.
‘나도 지금이라도 아예 다른 분야를 배워야 하나. 그렇게 어리진 않지만 모험을 하는 게 낫나.’
문득 7~8년 전 일이라는 걸 막 시작했을 무렵, 다녔던 회사의 대리님이 떠올랐다. 고양이상에 긴 웨이브 머리가 예뻤던 대리님은 특목고에 명문대 공대를 졸업했었다.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대리님에게 궁금한 거 다 물어봐도 되냐고 했더니, 대리님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상냥하게
“네, 그럼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뭐든!” 라며 방긋 웃어 보이셨다.
나는 나의 머리와 의지로는 갈 수 없었던 학교는 대체 어떤 곳인지, 그리고 대리님에게 왜 대기업까지 들어가셨으면서 나오셨냐고 물었다. 대리님은 공부는 언니 따라 하다 보니 그냥 성적이 돼서 특목고를 갔고, 대학도 그랬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보니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일이라 성향과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하셨다.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해. 진짜 기계랑만 하루종일 있다가 집에 와. 그걸 매일 한다고 생각해 봐.”
역시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라더니 돌아보면 공대 졸업해도 전혀 무관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질문은 다시 나를 향했다.
‘난 지금 어떤 것 같지?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일 자체가 성향에 맞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문제는 수학처럼 명쾌한 정답이 없는 분야에서 나의 논리로 남을 설득해야 하는 것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적받고, 요구당하고, 고개 숙이고,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지만 해내라는 압박에 계속 깎여나가는 시간의 연속... 그걸 또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인지 강박인지 모를 알 수 없는 압박은 묘하게 더 날이 서서 여행 마지막 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타 갈아탈 때 아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 행복할 지경이었다.
'회사 일이었다면 또 시간도 돈도 까먹었다고 욕을 한 바가지 들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여행을 다니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욕도 먹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답답했다.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자리가 있을까. 거기가 내 자리는 맞긴 하나. 맞지 않은 자리에 억지로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간 건 아닐지. 실수하는 나를 내가 감히, 용서라는 걸, 해줄 수 있을까. 큰마음먹고 큰돈을 써서 온 미국에서, 이만큼 놀았으면 이런 기분이 안 들어야 하는데. 마지막 날 가족들에게 줄 영양제를 사고, 친구들에게 줄 조미료를 사러 트레이더조를 가는 길에 휘몰아치는 생각에 또 침몰당했다.
결국 귀국하고 한동안도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뒀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전혀 접점이 없을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일을 해보면서 나와 상대, 있었던 일, 막연히 느껴졌던 안 좋은 느낌 등 한데 엉겨 붙어 있던 것들이 서서히 각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달라지고 싶어도 꽁꽁 굳어버려 달라지지도 않고 자꾸 부딪치기만 해 도려내고만 싶었던 부분, 어떨 땐 너무 많이 생각하고, 어떨 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시간, 빨갛게 소금기 어린 얼굴로 잠들고, 아무것도 못 먹겠지만 손가락으론 하루도 빠짐없이 '죄송합니다.'를 타이핑 쳤던 그때... 그 모든 게 다 날아가고 필요한 부분만 위에 가볍게 떠서 그것만 쏙 추출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것도 아프지 않았고, 관계에서의 어려운 부분, 잘 맞지 않았던 것들, 다르게 행동해 볼 수 있는 부분과 그냥 둬도 큰 문제가 없을 성격, 상대의 것으로 둬야 할 부분, 그 어떤 것도 아프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엑셀 차트 보듯 바라보고 써먹을 수 있는 부분만 남기고 필요 없는 내역은 과감하게 딜리트를 눌렀다.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시간이 약이고, 믿지 않았지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무책임한 말 같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 안 변해.'라는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다 큰 성인이 쉽게 휙휙 바뀔 여지는 없을 것 같고, 뭐, 아주 틀린 얘기도 아니기도 했으니.
그러나 아니었다. 노력으로 힘들었던 일을 하나씩 복기해 볼 수는 있어도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에서 무언가를 건져내려면 분리되도록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시간의 할 일이었고, 시간이 '약'이 되는 시간이었다. 때로 그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흘러서 뒤쳐지거나,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와닿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힘들게 하는 모든 요소가 하나하나 다 따로 자기만의 층을 형성할 때까지 건드리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결심 하거나 매번 복기하면서 다독이지 않아도 된다. 휘젓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낭비’, ‘사치’, ‘엄살’, ‘유난’이라는 잣대의 막대기로 마음을 휘저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할 뿐이다. 오히려 멍하게 시간을 흘리다 힘들었던 그 시간의 모든 요소가 다 분리될 때까지는 다른 거 하면서 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러다 층이 명확하게 분리되고 나서 필요했던 부분만 쏙 건져서 보면 그만이다. 그러면 시간은 틀림없이 약이 되어준다. 명약이자 묘약이.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 막 바뀌진 않는다. 게다가 '남이 바꾸려 들 때'는 더더욱 요지부동이다. 스스로 바뀌려 해도 어렵긴 하지만 스스로 타협할 수 있는 선을 발견하거나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으면 달라질 여지는 있다. 그리고 사실, 막 달라질 필요가 없기도 하다. 고치기 힘든 점이 있다고 해도 환경에 따라서 그게 더 드러날지, 또 다른 면모가 부각되는지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도 달라진다. 상대에 따라 많이 달라져야 할 수도 있지만 덜 변해도 충분할 수도 있고, 그대로도 잘 지낼 수도 있다. 그러니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에 스스로를 너무 가둬놓을 필요 없다.
그러니 언젠가, 혹은 조만간 또 좌절에 데인다면 정신과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심리상담을 받거나 관련 책을 읽거나 등 나름의 처방은 내리더라도 시간이 할 일까지 대신해 주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나의 변화나 관계에서 있던 모든 일을 다 내 쪽으로 기울이지도 않을 거다. 대신, 내버려 두면서 아프지 않게 됐다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되면 또 힘차게 스트레칭을 해볼 것이다. 몸도, 정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