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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Mar 07. 2024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고연봉 월급쟁이는 영 안 될 것 같다고. 


남들은 연초에 사주를 본다는데, 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다. '이왕 보는 거 유사 과학보단 과학이 믿음직스럽지.'라고 생각하면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담을 받은 지 딱 1년 만이었다. 퇴사를 고려하던 그맘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주 평안했다. 아무것도 초조하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하게 자신에 차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구직을 하려고 공고를 보면 거의 대부분 있는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 항목에는 여전히 부합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선뜻, 서류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궁금해졌다.


선생님이 물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어떤 지점에서 압박을 느끼는지 말씀드렸다.


회사에 가서 누군가와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 없다’, ‘실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같은 말에 다 동의했지만 나의 의사소통 패턴을 바꾸지 않고 취업을 했다간 분명히 또 똑같은 장벽에서 좌절할 거라고 확신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 계기도 털어놓았다. 10년도 더 전에 단기 아르바이트 중 간단한 엑셀 함수를 물어봤다가 아주 크게 핀잔을 들었다. ‘이런 걸 왜 물어보냐’, ‘역시 엑셀 할 줄 모르는 애는 뽑지 말 걸 그랬다’ 같은 말이었다.

지금 같으면 겉으로는 대충

"넵, 죄송합니다." 하고 속으로는 

'찾아보니까 별 것도 아닌데 왜 저래. 그렇게 싫으면 채용공고에 엑셀 필수라고 올리지.'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를 못해서 완전히 주눅 들어버렸는데, 그 이후로 찌그러진 기세는 펴질 기미를 보이지 못했고, 질문을 하면 멍청한 사람인 걸 들키는 것 같았다. 꼭 필요한 요청도 겨우 말을 하는 상황에서 들어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을 꺼내야 하면 숨부터 턱 막혔다. 점점 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 또한 아무도 날 부르지 않고, 나도 아무도 안 부르고 하루가 가기를 바랐다. 




추가적으로, 원체 성향이 불편하거나 궁금한 일이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한다. 


질문 공포증과 그런가 보다가 합쳐져서 모르는 걸 모른다는 자각도 잘 들지 않았고, 자각이 된다고 해도 대부분은 혼자 해결하려고 용썼다. 그리고 막상 물어보면 어떤 것은 ‘이런 것도 물어봐?’였고, 어떤 것은 ‘이런 건 왜 안 물어봐?’였다. 그 과정에서 잘 되는 건 당연한 거고, 안 되는 건 죽을죄였는데, 나는 살려달란 읍소를 꽤 자주 했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쭉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또봄 님은 혼자 해결하는 방식이 더 익숙하신 거 같아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막 어울리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혼자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게 더 맞는 성향의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그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가 보시면 됩니다.”


당황스러웠다.

‘이 방향으로 가려면 어떤 장비를 추가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는데,

‘여기 코스는 맞지 않으니까 다른 코스로 가보세요.’ 라니?

으레 "이렇게 저렇게 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처럼 얘기해 주실 줄 알았는데 해설 풀이 들으러 왔다가 되려 별 다섯 개의 고난도 숙제를 받은 학생이 되었다. 예상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고개를 푹 떨구고 나의 현실에 대해 다시 말씀드렸다.

"그렇지만 회사에 취직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 막막해요..."

회사에 취직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 알 수 없는 내 상태가 말을 하면서도 서글펐다. 그렇다고 사업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외모나 예술적인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엇을 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건지 막막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꽤 단호했다. 

"타고난 성향을 바꿀 수는 없어요. 내가 바꾸고 싶은 부분을 성향과 너무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부딪치게 되면 자꾸 자책만 하게 돼요. 그러니 그런 부분은 일 외적인 부분으로 부딪쳐 보시고, 일은 조금 더 자기 성향과 맞는 일을 찾아보세요.”


‘아니, 선생님, 현실적으로 대책도 좀 알려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마음속으로는 대차게 따졌지만 막상 목소리는 자꾸 기어들어갔다.

"퇴사한 지 벌써 반년이나 지났고... 글을 깨작깨작 쓰고 있긴 하지만... 이걸로 밥 먹고 살 수 있을지도 진짜 모르겠어요."

"기능적인 부분은 처음엔 서툴고,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는데, 그거는 하다 보면 자꾸 좋아집니다. 그리고 뭐, 1년 쉬는 게 어때서요. 2년씩 쉬시는 분도 많이 봅니다."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상담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는 갈 때보다도 더 추적추적 내렸다. 머리가 복잡했다. 성향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진짜 팔자라는 게 있나? 좋아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지금까지 그런대로 사회생활을 해왔던 것 같기도 한데.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일은 원래 어렵고 힘든 거고, 나랑 안 맞는 거고, 월급 때문에 하는 거고… 먹고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단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꽤 일관됐다. 작년 친구 따라가봤던 역술가에게서 ‘프리랜서 팔자’라는 말을 들은 건 차치하고, 단기 알바로 잠깐 뵀던 분으로부터도 ‘조직 생활에 안 어울려’라든지, 심지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단기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분께는 ‘글 관련된 일을 할 것 같은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글밥 관상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니 선생님은 오랫동안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내 모습을 간파해서 아예 현실의 끈을 끊어버리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습관이 안 잡혀서 깨작만 대고 있는 주제에 나이 들어서 가난하고, 쓸쓸하게 늙어 죽을까 봐 여전히 불안하다. 어떤 날은 불안해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고, 어떤 날은 불안한 만큼 자판을 더 두드린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쓰면 쓸수록 고갈되기보다 나아지고, 더 쓰고 싶어지는 걸 하염없이 느낀다. 쓰고 싶은 장르나 주제도 삐죽삐죽 올라온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을 서서히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사형선고가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가는 단서를 찾은 거라고 믿으려 한다. 소설에서도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가면 꼭 죽던데, 지금 있는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면 죽긴 죽어야 하나보다.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세계에서 나의 꿈을 이루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설령 다시 회사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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