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조각들_미소

#오래된 것들과의 안녕

by 아이리스

미소가 온다.

내 친구.

나란히 앉아 공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친구.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알게되었으니 벌써 강산이 두번이나 변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동안 강산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원하던 직업을 얻었으며, 배우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아, 친구나 우정에 관한 글을 쓰려는건 아니다. 돌아올 주말에 미소와 두 꼬마손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였다. 오랜만에 손님맞이를 하게 될 집을 한번 둘러본다. 지금이 기회구나. 미루고 미루었던 집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햇수로 10년차. 오래된 이불, 작은방의 낡은 소파, 빛바랜 조명스탠드, 더이상 거들떠보지 않는 장난감과 책 등.. 현재의 필요와 상관없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오래된 물건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물건을 사는 일은 쉽지만 버리기는 어렵다. 가령 옷 하나를 새로 산다면 기존의 하나는 버려야 옷장의 부피가 유지된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방심하는 순간 현실은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워진다. 일년이상 손대지 않은 것들은 앞으로도 사용할 일 없을 것이라며 아깝지만 정리하기로 한다.


음. 어디서부터 손을 댈까? 먼저 요즘 즐겨듣는 가수의 음악을 스피커에 연결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할때는 의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과 연결시킨다. 구역을 나누어 버릴 것들을 따로 빼놓는다. 한때는 새것이었을, 쓸모있었던 손때묻은 물건들이 여럿 쏟아져나온다. 오래 잊고있던 타임캡슐을 마주한 것처럼 잊고 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모든 물건에 과거의 내가 있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하다. 하지만 어쩌나. 버려야 다시 채울 수도 있는것을.. 아직 갈길이 먼데 감상에 빠지는건 사치다. 플레이리스트를 좀더 경쾌한 음악으로 바꿔 분위기를 전환해본다.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있다. 미리 사둔 디퓨저를 화장실에 놓는것으로 오늘의 숙제는 끝이 났다. 포근한 비누향이 은은하게 대기를 채운다. 몸은 피로하지만 마음은 후련하다. 집안의 짐들을 줄였을 뿐인데 마음까지 한결 가벼워진다. 오늘만큼은 여느 호텔이 부럽지 않다. 앞으로는 좀더 부지런해지기로 마음먹어본다.


고요한 시간,

식탁에 앉아 정돈된 집을 바라보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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