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조각들_밤산책

#밤산책. 하루의 에필로그

by 아이리스

주말 저녁식사를 마치고 8시를 넘긴 시간.

사용한 식기들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어놓은 후 안방으로 향한다. 옷장을 열어 고민하다 하늘빛의 코듀로이 상하의 트레이닝복을 오랜만에 꺼내어본다. 오늘같은 날씨라면 가능할지도. 입고있던 실내복을 한쪽에 벗어두고 골라놓은 옷으로 갈아입은 후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갔다올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온다. 제법 서늘해진 밤공기가 생경하다. 후드의 지퍼를 채워올린다. 일몰시간이 한참 지나인지 인적도 드문 한밤중같다. 몇개의 코너를 돌아 산책로에 이르면 세로로 길게 놓인 우시장천을 따라 걷는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켜있기는 하지만 꽤 어두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자세히 알아보기 힘들다. 고요한 가을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이어폰에서는 백예린의 antifreeze가 흘러나온다.


어느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노래에 집중하며 타박타박 걷는다. 이런저런 생각 구름들이 머릿속을 잠시 머물렀다 떠났다를 반복한다. 생각이 비워지는걸까 채워지는걸까?


3단지 초입에는 어김없이 얼룩고양이 치즈가 있다. 인기쟁이 곁에는 주변사람들이 모여드는 법. 오늘도 역시나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있다.

내 발걸음의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풍경들을 느끼며 걷다보니 어느새 이 길의 끝, 아직 환하게 불이 켜진 도서관에 다다른다. 도서관 앞 몇개의 운동기구가 놓여진 작은 공터에서 비로소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냥 지나칠수는 없지!

손깍지를 끼고 팔을 위로 쭉 뻗어 고개를 들어올린다. 가로등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있는 나뭇잎들이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듯 낮보다 유난히 무성하고 반짝인다. 제일 좋아하는 핸들 모양의 운동기구 앞에 선다. 핸들을 돌리며 어깨와 팔을 움직여주니 제법 시원하다.


한결 가뿐해진 몸을 느끼며 이제 돌아갈 시간. 도서관 옆 개천 위에 놓인 다리로 이동해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방금까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왔던 길인데도 반대쪽에서 걸으면 새로운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좋다. 흩어진 낙엽길을 따라 저벅저벅 걷는다. 빠르게 다가왔다 멀어지는 러닝하는 사람들, 물이랑교 아래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지나 단지로 들어온다.

멀리 집이 보인다.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들어 세어본다. ..3, 4, 5, 6, 7층. 불켜진 창가로 거실에 놓인 나무의 실루엣이 비친다. 산책 후 집에 갈 때는 꼭 계단으로 걸어올라간다. 열심히 걸은 후의 마지막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마무리하긴 너무 아쉽지! 이미 예열이 된 다리로 7층쯤은 아주 가뿐하다.


뚜벅뚜벅 걸어올라 벌써 현관문 앞. 초록빛과 하늘빛이면 충분했던 산책길과는 다르게, 이 문 안에는 환한 형광등 아래 다채로운 색채의 또다른 세상이 들어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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