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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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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Apr 17. 2023

예의에 대한 주관

“선생님! 그래서 연하남 꼬신 거예요?”


나는 9개 반을 주당 2시간씩 수업한다. 30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로 무리 지어놓는 학급은 저마다 특성이 있다. 그 와중에 참 신기하게도 나와 잘 맞고 수업이 재미있는 반이 특정되었다가 서로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요즘 수업이 재밌는 반이 있는데 0반이다. 대답을 잘해주는 2명의 재치 있는 친구와 그에 적절한 긍정적인 반 분위기 덕분이다. 민법의 가족 범위에 대한 수업내용일 때는

“그럼 동거를 하면 불법이에요? 잡아가요?”라는 질문에

“법이 왜 벌을 준다고만 생각해? 법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라서 혼인신고를 안 하게 되면 부부로서 여러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뿐이야. 잡아가지 않습니다!”

라고 하니

“와 법이 우리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단 말 멋있어요! “라고 반응해 준다.


그날은 가족의 기능에 대해 배웠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여러 일들 중에 애정 및 정서적 기능의 중요성에 대해 목놓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설명의 소재로 0-3세의 애착에 대해 말했고, 부연설명으로 보다 흥미를 끌려고 아이들의 이성교제를 소재로 삼았다.

“너희가 연애할 때 말이야~ 사랑을 준다는 마음으로 만나야 오래 만날 수 있어~ 그런데 사랑을 주려면 받은 게 있어야 할 거잖아? 그걸 바로 가정에서 받아야 하는 거야. 근데 계속 받기만 하면 그 사람도 주고 싶잖아~ 그래서 선순환이 되는 거지! “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재치 있는 J가 불쑥


“선생님이 그래서 연하남 꼬신 거예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내 눈은 커졌고, 반 아이들이 나보다 더 소리를 지르며 ” 너 선 넘었어!! “라고 외쳐댔다.


‘아차, 남녀의 초혼연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연하 남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었구나 ‘ 그걸 기억한 J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J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내가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분위기를 잡아놓곤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책임감 있는 아이다.

J가 바로 죄송하다고 몇 번을 말했고, 나도 분위기 맞춰 노발대발하다가 수업 끝나고 이야기하자며 상황을 수습했다.

 가끔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가려던 내 시도가 이렇게 역으로 나를 곤란케 하는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내 태도는 1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에게서 권력을 얻기는 싫다. 내 지위로 아이들에게 순응하도록 하기보다 내가 너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관계가 되고 싶다. 내가 기분 나빴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사생활이 비하되어서였다.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였다거나 어른에게 버릇이 없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권위는 내 지도력을 믿고 아이들이 내게 준 것이기에 그것에 도전하는 일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수업 후 J와 만나 이야기를 했다. 심각한 표정과 후회하는 눈빛, 고개 숙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J야 왜 그랬어?”

“저도 모르게 웃기도 싶어서 그랬어요”

남편에게 많이 들어본 말이다. 웃기고 싶을 때 말실수를 하는 건 애나 어른이나 비슷하구나. J의 말은 그간 부부싸움의 경험으로 아주 잘 이해가 됐다.

“근데 선생님은 애들이 다 듣는데서 그렇게 얘기해서 곤란했어. “

“네, 제가 샘 입장 생각 못하고 정말 죄송해요.”

J의 태도는 어른에게 버릇없이 행동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큰 듯 보였다. 이런저런 말로 주의를 주며 마지막에 한말은

“이건 샘이 아니라 친구한테 말해도 기분 나쁜 거야. 그리고 샘이 안 꼬셨어.. “

J에게 예의는 어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배려와 존중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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