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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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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May 02. 2023

여정으로서의 상담주간

학기의 정점

학교의 교사는 여러 일을 한다. 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에 취업했것만 각종 서류 작업과 담임의 역할이 8할이라 늘 수업 준비는 야근 때 해야만 했다. 그중에 가장 난이도 있는 일은 상담이다. 지난주는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교무부에서 보내온 상담주간 신청 파일을 열어보니 일주일 동안 20분의 학부모님을 상담해야 했다. 26분의 부모님이 신청한 반도 있으니  20명이라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상담일정부터 조율하고 한주의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간 우리 반 친구들의 상담은 모두 이뤄졌고, 이제 부모님이 들려주시는 우리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상담은 전화 상담과 방문 상담으로 나눠졌고 방문 상담은 6분 정도였다.

상담을 할 때 어떤 부모님들은 내게 고민을 털어놓으신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아이에게 온전히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N은 예고의 연극영화과를 준비하고 있다. 방과 후 연극영화과 지원을 위한 원거리의 학원을 주 3회 다니고 남은 2일은 댄스동아리 연습을 한다. 문장만 보면 열정 넘치는 친구인 듯 보이지만 새하얀 얼굴의 가녀린 체구를 가진 체력이 약한 여학생이다. N의 어머니와 상담예약 시간에 공교롭게 N은 빈혈 증상으로 조퇴를 해서 어머니가 링거를 맞게 해 주고 나오신 상황이었다.

“선생님, N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체력은 안 따라줘서 동아리라도 줄이라고 하고 싶은데 말을 안 들어요.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생겨서 더 바빠졌어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

“아… N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체력은

안돼서 건강 걱정에 많이 혼란스러우신가 봐요 “

“네, 말도 안 듣고 체력이 바닥이 날 때까지 저렇게 해요.”

“어머니, 그런데 어머니가 힘내셔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힘들 때 기댈 곳이 있죠. 그리고 반복적으로 지금의 이야기를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얘기할 때는 늘 처음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해 주세요.”


D의 부모님은 나와 첫 전화상담부터 약간의 화를 내셨다. 전 상담에서 늦어져 15분이나 상담이 뒤로 밀렸던 것이다. 상담이 매끄럽진 않았고 그 불편함이 마음에 걸림으로 남아있다.


D의 상담이 끝나고  교무실로 들어가니 J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전 J부모님과 통화에서 부모님 중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으시고 항암치료 중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계신 모습을 보고 밝게 인사드렸지만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마주 앉은자리가 어려웠다. 감히 위로의 말을 해도 될까 싶어 말을 아끼고 아꼈다. J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하시곤 J와 J의 동생이 사춘기라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이런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아픈 사람에게 조금 더 신경 써주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 J 어떻게, 우리 J 어떻게”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약하지만 오늘 하루 J의 삶을 응원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러 분의 부모님과 상담을 하는 일주일이 긴 여정 같았다. 부모님이 들려주시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아이들의 가벼움이 채워져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기도 했고, 다채로운 색으로 변해 내 눈 속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겐 누구와의 상담이든

소중하지만 어렵다. 한 학생의 역사로 나도 한 발짝 들어가 공감하고 아이의 행동과 속내를 연결 짓는 일이라 내 책임감의 무게가 묵직해진 느낌이다. 이로서 올 한 해 아이들의 어떤 삶이든 응원할 준비가 된듯하다. 우리 반 일 년 동안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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