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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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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Sep 10. 2023

교사일기

6. 혼돈의 나날

나는 한 달에 한번 자리를 바꾼다.

교실 자리는 아이들에게는 학교 생활을, 교사에게는 수업시간을 좌우하는 중요한 환경이다.

담임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자리를 배치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방식은 제비 뽑기 또는 랜덤 프로그램사용이다.


모든 학생이 어떤 자리배치도 적응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학생의 특징을 반영하여 하루의 조정시간을 주고 메시지로 의견을 받는다. 의견이 타당하고 전체 학생과 합의가 되면 조정하고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추가 조정은 없다.


그런데 이번 자리 조정기간에 싸움이 났다.

a는 시력을 이유로 자리를 앞자리로 바꾸고자 했고, 뒤로 가고 싶은 b와 c가 교실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b는 “나는 입시 준비로 너무 힘들어 뒤에서 편하게 자고 싶어( 예능계 특목고 준비 중)”

c는 “너만 입시 준비하냐 우리 다 힘들어. 나도 뒤로 가고 싶어.”

허허 수업 안 듣겠다는 말들이 왜 이렇게 당당한지….


이에 a는 “너희가 그러니까 정말 선택하기 힘들어. 음… 그럼 난 c자리로 갈래 (c자리뒤에 내가 좋아하는 k가 있어)”


하아… a는 사랑과 우정 중 사랑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 크으..

화가 난 b는 졸업앨범 촬영조, 체험학습조를 모두 a, c와는 안 하겠다고 하고 온라인상의 친구들 단톡방도 모조리 나갔다고 한다.


음… 나처럼 이 상황을 걱정하는 d가 내게 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나도 상담이 필요하다. “우리 나가서 카페 가서 얘기하자!”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반에 치정으로 얽혀있는 사각관계가 있는데(그 a가 앉고 싶은 자리 뒤에 앉아있는 k를 우리 반 3명이 좋아한다. ㅠ) 1학기에 사그라들었다가 최근 개학 후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 사각관계가 다시 시작됐단다. 그런데 이번 자리 조정에 불만을 갖고 있는 b가 이 사각관계의 친구들을 한 명씩 접근해서 사각관계에 불씨를 던지고 있단다.


앗! 머리가 아파온다. 대부분의 교우 관계는

교사가 개입하기 어려운데, 치정관계는

더욱 그렇다. 얽히고설켜있는 관계도를 머릿속에 넣고 담담히 지켜보며 난 어디까지나 중립을

선언해야 함을 다시 한번 되뇐다.


“d가 중간에서 마음이 복잡하구나. 공감 잘하는 d는

그럴만하지,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 마음 많이 쓰지 말고 같이 지켜보자.”


모든 인간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은 더욱 그렇다. 어떤 개입으로 인해 국면이 바뀌어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른 척 지낼 수는 없다. 당장 이아이들의 갈등이 체험학습 분위기, 졸업앨범 촬영을 뒤흔들 예정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상담 필요여부를 적시에 묻고 관심을 가져야 더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는다.


d와 이야기를 끝내고 카페에서 나와 인사를 나누는데 d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제가 제 짝이랑 사귄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d야 너도 치정이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이 뭘 어떻게 해.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어른들의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이 기다림과 관심의 복합적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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